유럽서 시작한 CBAM 미국판 통과되면 2년 뒤 탄소비용 부과
11월 대선서 트럼프 당선돼도 공화당이 찬성할 가능성 높아
탄소중립에 무관심한 우리 정부 속히 청사진 마련해 실행해야
11월 대선서 트럼프 당선돼도 공화당이 찬성할 가능성 높아
탄소중립에 무관심한 우리 정부 속히 청사진 마련해 실행해야
2023년 12월 6일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민주당 상원의원인 셸덴 화이트하우스는 3422호 법안을 상원에 제출했다. 소위 청정경쟁법(Clean Competition Act)으로 불리는 탄소세법이다. 이 법안은 1986년 내국세법(Internal Revenue Code of 1986)의 개정안으로, 특정 품목에서 탄소배출에 대한 국경 조정을 도입하는 내용이다. 무역에서 탄소누출을 줄이고, 미국 내 제조업체와 수입업체 간 공정경쟁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유럽연합(EU)이 이미 도입해 시행 중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미국판이라고 보면 된다.
입법 목적은 미국 시장에 들어오는 외국 제품에 대해 미국 내 산업 평균보다 높은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배출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자국 업체에 불리하지 않은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철강, 알루미늄, 화학제품, 화학비료, 석유정제품, 시멘트, 수소, 아디프산, 유리, 펄프 및 종이, 에탄올의 12개 품목에 적용될 예정이어서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보다 적용 범위가 넓다.
법안이 통과되면 해당 기업들은 2026년 6월 30일까지 관련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산업활동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사용 전력과 함께 세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보고된 내용을 바탕으로 탄소비용이 부과된다.
법안은 탄소배출 규제에 관한 높은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EU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미국의 고민이 반영돼 있다. 만약 실행된다면 우리나라같이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 많은 국가들은 자국 산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기업들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정부는 기업들이 저탄소 제품을 개발하고 친환경 전환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미 유사한 법안이 제안됐다가 폐기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발효되기까지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 정책을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순순히 받아줄지도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과거와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EU가 이미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잠정 시행하고 있다. 2026년 1월이면 EU시장에 6개 품목을 수출하려는 기업은 탄소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탄소비용이 실제로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탄소세법을 마냥 미룰 수는 없다.
둘째, 이 법안은 미국 내 기업과 외국기업이 동일한 탄소규제 속에 있도록 하자는 것이므로 트럼프와 공화당의 기본철학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법안이 아니다.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외국 철강 수입을 막자”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미 의회에서 초당적인 협력으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EU와 미국 외에도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유사 법안을 준비하거나 국내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응하고 있다. 선진국이나 강대국이 자국 내 준비가 끝나면 갑자기 새로운 규제를 도입해 국제규범으로 강제하는 것이 전례였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
그동안 미국이나 EU에서는 자국 내 기업이 상대적으로 더 엄격한 환경규제를 피해 인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한 다음 거기서 생산한 제품을 다시 국내로 들여와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환경규제를 회피하는 행위가 자주 있었다. 소위 더러운 철강산업(dirty steel industry) 문제다. 이제 미국과 EU는 이러한 불공정경쟁 상황을 차단하려 한다.
기업들은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탄소를 줄이기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는 중고품 재활용과 수입도 포함된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는 이유는 제조공법이 낙후돼서가 아니다. 고철을 덜 활용하기 때문이다.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는 것보다 고철 활용이 이산화탄소를 훨씬 덜 배출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정부도 어떻게 할 것인지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도통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에 적극적이지 않은 정부의 행보는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유발한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