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3급 비밀’로 취급되는 외교부 문서가 공개되자 야당 의원의 공개 행위를 두고 적절성 논쟁이 벌어졌다. 국익에 저해되는 기밀 유출 행위가 국민 알 권리 충족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의견과 국가 기밀을 방패 삼아 정부의 실수가 은폐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당일 국감장에서 3급 비밀 외교 문서에 해당하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 판세 메시지 송부’를 공개했다. 지난해 11월 부산엑스포 유치국 결정을 위한 국제박람회기구(BIE) 투표 직전 외교부가 BIE 회원국 주재 공관에 보낸 문서였다.
공문에는 1차 투표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이 접전하고, 2차 투표에서 한국이 유치에 성공할 것이라는 판세 분석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후 사우디는 1차 투표에서 참가국 3분의 2 이상인 119표를 얻어 2차 투표 없이 바로 유치를 확정했다. 외교부 분석이 완전히 틀린 것이다.
의원들은 외교부의 실책보다 기밀문서 유출 문제를 놓고 집중 공방을 벌였다.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국기 문란이자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준형 의원은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 관한 내용이 아니고 본부와 공관의 일이라 몇 달씩 고민해 (공개를) 결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두 의원 모두 외교부 고위직 출신이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조차 기밀을 대하는 방식이 엇갈린 것이다.
국가 기밀이란 공개될 때 국가의 이익이나 안보에 해가 된다는 판단에 따라 비공개 처리되는 자료다. 민감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해당 기밀 취급 허가를 지닌 사람만 열람할 수 있다. 국가 기밀은 군사·외교·첩보로 나뉜다. 특히 외교 기밀은 더 예민하게 다뤄진다. 외교 공관 철수 시 외교 문서는 반드시 인멸하도록 돼 있다.
기밀 등급은 총 3단계로 나뉜다. 1급 비밀은 누설될 경우 상대국과 대한민국 사이 외교 관계가 단절되는 등 치명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비밀이다. 2급은 국가 안전보장에 ‘현저한 피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이고, 3급은 ‘상당한 피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이다.
다만 기밀 문서는 기한이 존재한다. 국익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잘못된 행위를 국가 기밀로 묻어놓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일을 막기 위한 제도다.
국가 기밀 공개 행위를 두고 법조계에서도 여러 의견이 나온다. 앞서 2017년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이 출간되자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노무현정부가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 때 북한의 입장을 물어본 뒤 기권 결정을 내렸다는 민감한 외교·안보 기밀 사항이 담겨 있어서다.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측은 송 전 장관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송민순 회고록’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당시 반론도 적지 않았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의 국가 기밀 유출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시기상 기밀 보호가 국민의 알 권리에 우선한다는 얘기였다.
정치인의 국가 기밀 유출에 유죄가 선고된 예도 있다. 강효상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2019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문 전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방한을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은 외교부 3급 비밀에 해당한다. 강 전 의원은 해당 내용으로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법원은 강 전 의원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은 합의된 내용이 공식 발표될 때까지는 기밀로 엄격히 보호해야 할 사항”이라며 “한·미 정상이 방한 관련 구체적 논의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통화 내용을 공개할 중대한 사유가 있거나 긴급한 사안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 전 의원은 하급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 기밀이 공개되는 경우도 생각해볼 문제다. 앞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2019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 증인 출석을 앞두고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다. 심문 과정에서 당시 한국과 일본 사이 최대 현안이던 강제징용 문제가 다뤄질 수밖에 없는데, 자신이 답변을 하다 보면 외교 기밀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윤 전 장관의 요청을 기각했다. 이후 공개된 법정에서 2급 비밀을 포함해 외교부의 강제징용 관련 기밀 문서가 상당수 드러났었다.
당시 외교부 내부에서는 “한·일 관계가 날로 악화하는데 법원이 나서서 정부의 대일 외교 전략을 고스란히 알려줘 버렸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기밀이 공개되는 바람에 일본과의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지난 외교 기밀이 공개되면 어떤 나라가 한국과 소통하고 민감한 정보를 주겠느냐는 토로였다.
다만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당시 재판에서 다뤄진 기밀은 국민의 알 권리 측면에서 공개돼도 문제되지 않는 것이면서 국익에 해를 끼치지도 않는 것들”이라며 “재판은 공개가 원칙이라 비공개로 전환할 때는 분명한 명분이 필요한데 국익이라는 개념은 너무 모호하다”고 말했다. 외교 기밀 설정 및 공개와 관련한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이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