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여행] 바위 사이 울긋불긋 ‘한 폭의 수채화’

입력 2024-10-17 04:05
올 단풍은 폭염 영향으로 예년보다 늦다. 일찍 보러 또는 더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보기 위해 산을 찾는다. 단풍의 선두주자 설악산 서북능선.

가을에는 단풍이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단풍은 기온 변화로 인해 나뭇잎의 빛깔이 변하는 현상이다. 단풍이 곱고 예쁘게 물드는 데는 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는 등 특별한 날씨 조건이 필요하다. 일교차가 심할수록 색이 더 선명해진다. 평지보다는 산, 음지보다는 양지바른 곳에서 아름답게 물든다. 단풍을 보러 산을 찾는 이유다.

단풍의 선두주자 설악산

산 단풍의 선두주자는 설악산이다. 산 정상에서부터 20%가량 단풍이 들면 첫 단풍이고, 20일 정도 지나 80%가 물들면 단풍 절정이다. 설악산의 첫 단풍이 예년보다 6일 늦은 10월 4일이었으니 10월 24일이면 절정이 되는 셈이다.

설악산 천불동계곡은 설악동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3㎞의 완전 평지를 걷고 나면 시작된다. 비선대에서 완만한 오르막 숲길을 따라 걷다가 약간 가파른 고개를 숨가쁘게 오르면 귀면암에 도착한다. 귀면암에서 중도 포기하고 되돌아가면 후회한다. 계속 진행하면 깎아지른 듯한 바위 골짜기에 5개의 폭포가 연이어 절경을 이루는 오련(五連)폭포가 나온다. 오련폭포를 더 지나면 양폭대피소와 천당폭포에 도착한다.

좀 더 높은 곳에서 일찍 단풍을 즐기려는 이들은 설악산 서북능선을 찾는다. 설악산 서북능선은 대청봉(1707.9m)에서 대승령을 지나 안산으로 이어지는 약 13㎞ 구간이다. 설악의 전모를 두루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코스가 따라올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 멀리 용아장성과 그 너머 공룡능선이 빚어내는 설악산 특유의 암봉이 황홀한 풍경을 펼쳐놓는다. 암봉 사이 울긋불긋한 단풍의 빛깔이 한 폭의 그림이나 다름없다.

안개 바닷속 오색찬란한 기암, 주왕산

주왕산 장군봉 조망터에서 보는 단풍 운해.

경북 청송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이다. 이 돌산에 오색찬란한 단풍이 화려한 수채화를 그려낸다.

주왕산 탐방코스 가운데 등산 초급자에게 추천하는 코스는 주왕계곡코스다.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 내원동 옛터를 탐방하는 왕복 기준 10.6㎞, 총 4시간20분 정도 걸리는 부담 없는 코스다.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가을철 단풍을 감상하기에 최적화된 길이다.

중급자에게 추천하는 코스는 장군봉~금은광이코스, 월외코스, 절골코스다. 장군봉~금은광이코스는 총 11.8㎞로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장군봉과 금은광이, 주왕계곡을 지나는 코스로, 가파른 암벽을 올라 능선을 따라간다.

2㎞ 급경사 암벽 길 끝에 만나는 장군봉은 최고 조망터다. 장군봉 정상 400m쯤을 앞둔 곳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 서면 발아래 기암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른 아침 단풍으로 수놓은 기암 아래로 안개바다가 일렁인다.

고운 아기 단풍이 수놓은 내장산

고운 아기 단풍이 아름다운 내장산 우화정.

전북 정읍시 내장산(內藏山·763m)은 ‘호남의 금강’이라 불린다. 전북 정읍시와 순창군, 전남 장성군에 걸쳐 있으며 예로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다. 단풍철이면 단풍보다 많은 사람이 찾아든다는 산이다. 단풍나무, 당단풍, 좁은 단풍, 털참단풍, 고로쇠, 왕고로쇠, 신나무, 복자기 등 다양한 단풍나무와 천연기념물인 굴거리나무 등 50여 종에 이르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조화를 이뤄 ‘가을색 향연’을 벌인다. 단풍잎이 얇아 붉은색이 잘 들고 색이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내장산 초입 연못 가운데 우화정(羽化亭)이 있다. 파란 지붕 정자 주변의 울긋불긋 단풍이 수면에 비쳐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내장산 단풍터널은 마치 꽃대궐 속을 거니는 것처럼 환상적이다. 단풍잎이 아기 조막손처럼 작고 단풍이 들면 진한 핏빛 같은 ‘아기단풍’ 숲길을 걸으면 마음마저 물든다.

고추장보다 붉은 강천산

제대로 고운 강천산.

강천산은 전북 순창군 팔덕면과 전남 담양군 용면의 경계에 있다. 정상이 584m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단풍 풍경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연대봉(603m), 선녀봉(578m) 등 고만고만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계곡은 깊은 가을 풍경을 빚어낸다.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단풍철엔 물감을 칠한 듯 색색으로 변해 상한가를 친다.

강천산 일주산행도 있지만 병풍계곡에서 강천사를 지나 현수교 전망대를 거쳐 구장군폭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만 돌아봐도 가을 여행에 ‘엄지척’이다.

강천산의 명물 구름다리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현수교다. 지상 50m 높이에 폭 1m, 길이 76m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아찔한 풍경을 내놓는다. 다리 아래로 내려다보면 바람에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단풍물결이 선계를 그린다. 120m 높이의 구장군폭포는 웅장한 산세와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