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해도 남편은 반말, 아내는 존대?… 법원 영상 ‘눈살’

입력 2024-10-16 00:04 수정 2024-10-16 00:04

최근 배우자와 협의이혼 절차를 밟던 A씨는 불쾌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부부가 법원에 이혼 신청서를 접수하기 전 필수로 시청해야 하는 동영상이 문제였다. 누구나 알 법한 뻔한 내용에, 아내는 남편에게 존대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을 쓰는 등 시대착오적인 연출도 포함돼 있었다. A씨는 “9년 전 올라온 영상이라 요즘 상황과 맞지 않는 내용이 많았는데, 이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소감문까지 써내야 해 난감했다”고 말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부가 협의이혼을 하기 위해서는 이 동영상을 시청해 자녀양육안내를 받아야 한다. 영상 시청은 민법 836조의2와 대법원 예규인 ‘가사재판·가사조정 및 협의이혼 의사확인 절차에서의 자녀양육안내 실시에 관한 지침’에 따른 절차다.

이는 법원이 협의이혼 시 자녀의 복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보호장치다. 법원은 내용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인적, 물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지방 단위 법원에서도 손쉽게 진행할 수 있게 하려고 동영상 교육이란 방법을 택했다.

현재 교육에 쓰이는 영상은 2015년 대법원 유튜브 채널에 올려둔 ‘이혼, 우리 아이를 어떻게 지키고 돌볼까요’라는 제목의 콘텐츠다.

문제는 이 영상이 가정마다 협의이혼을 결정한 사유와 처한 상황이 제각각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혼 가정의 갈등 양상을 양육권 분쟁 중인 가정, 부모가 교섭권을 두고 다투는 가정, 양육비 지급을 미루는 가정 등 3가지로 지나치게 단순화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부 법원은 소감문을 통해 ‘영상 속 가족 가운데 현재 자신이 겪는 어려움과 가장 닮은 가정을 고르고 이유를 적으라’고 요구한다. 이 같은 법원의 요구에 일부 이혼 신청자들은 ‘짜맞추기를 하라는 거냐’며 곤혹스러웠다고 전했다. 심지어 건당 5만원 정도의 비용을 내고 소감문 대리 작성을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

영상에서는 ‘아이에게 부모 중 한쪽 편만 들라고 강요하지 말 것’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할 것’ ‘한쪽 부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쏟아내지 말 것’ 등을 제시한다. 양육 관련 정보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지침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 관계자는 “보편적인 수준에서 교육 영상을 만들다 보니 개인마다 느끼는 편차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현재 동영상 외의 책자도 개발 중이며, 내용 중 부족한 부분은 꾸준히 고쳐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