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로 쪼개진 국가교육위, 백년대계커녕 한치 앞도 캄캄

입력 2024-10-16 01:31

‘백년대계’ 수립을 목표로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가 존재 이유를 의심받을 만큼 삐걱대고 있다. 갈라진 의견을 모으는 본래 기능은커녕 패를 갈라 싸우며 오히려 갈등을 확산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정파성’이란 태생적 한계로 인해 누적된 내부 갈등이 출범 2년을 맞아 터져 나오는 양상이다. 향후 정치 일정과 맞물려 집권 세력의 ‘거수기’로 전락하거나, 사사건건 충돌하는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15일 교육계에 따르면 국가교육위는 입시 등 민감한 정책을 설익은 상태로 외부로 유출하고 있다(표 참조). 수능을 한 해 2번 보거나, 수능을 Ⅰ·Ⅱ로 나누는 등 파장이 큰 내용을 흘려 학교 현장에 혼란을 줬다. 사교육이 ‘불안 마케팅’으로 학부모를 현혹하는 재료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단순 기강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 갈등의 표출이란 해석이 많다. 국가교육위 내부 소식에 밝은 관계자는 “국가교육위를 망치려는 고의적 유출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됐을 뿐 정식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은 정책을 흘려 신뢰도를 허물려는 의도란 것이다.

최근에는 여권 추천 위원과 야권 추천 위원이 제각각 기자회견을 열어 서로를 맹비난하는 일도 있었다. 야권 성향의 위원 6명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국가교육위는 총체적 실패”라고 규정했다. 여권 성향의 위원 7명은 “국가교육위 발목을 잡으려는 의도”라고 맞받았다.

갈등은 국가교육위 출범부터 예고돼 있었다. 먼저 국가교육위는 여야 합의의 산물이 아니다. 국가교육위법 제정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의 강력한 반대에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태생부터 반쪽짜리였다는 것이다.

법은 내부 갈등을 피하기 어렵게 설계됐다. 위원은 모두 21명인데, 대통령이 위원장을 포함해 5명을 지명한다. 당연직인 교육부 차관을 합하면 6명이다. 국회 추천 몫은 7명인데 여당은 3~4명 수준이다. 집권세력이 결정하는 구조로 정권의 거수기가 되기에 십상이다. 야당 몫 위원들은 “합의가 중요한 정책마다 (여당 추천 위원들이) 일방통행한다”고 주장했다.

정치 지형이 바뀌어 국가교육위가 정부와 각을 세우면 문제가 한층 커진다. 국가교육위 위원 임기는 3년으로 1회 연임할 수 있다. 초대 위원 임기는 내년 9월 종료된다. 2기는 2028년 9월까지다. 그사이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총선이 치러진다. 현 정부 주도로 구성된 국가교육위와 차기 정부가 1년6개월간 공존한다.

현재 국가교육위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중장기 교육 정책 방향을 담은 ‘국가교육발전계획’(발전계획) 수립이다. 올해 말 초안이 나오고 내년 3월 확정되는데, 2026~2035년 대학 입시를 포함하는 주요 교육정책이 담길 예정이다.

국가교육위는 발전계획의 테두리 안에서 대선 공약과 새 집권세력의 국정과제가 설계되길 희망하고 있다. 국가교육위법은 정부에 발전계획 준수를 강제하고 있다. 만약 발전계획의 방향이 새 정권의 공약·국정과제와 충돌하는 상황이 빚어지면 갈등과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국가교육위가 국민적 신뢰를 얻으면 대선공약이나 국정과제에 일정 수준 구속력이 있겠지만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지금 모습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국가교육위 내부의 정파성을 희석시키는 제도적 보완책 없이는 오히려 교육을 망치는 기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