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야구, 하는 러닝, 뛰는 매출

입력 2024-10-17 03:06
게티이미지뱅크

홍모(28)씨는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근처에 거주한다. 그는 “집이 야구장과 가까워 쉬는 날엔 보통 경기를 보러 간다. 원정 경기도 올해만 5번 넘게 갔다”며 “최근에는 야구를 같이 좋아하는 친구들과 러닝 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달리고 있다. 퇴근 후 유일한 낙”이라고 말했다. 2030세대 사이에 야구를 자주 관람하고 달리기를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야구와 러닝의 공통점은 ‘덕질’이 가능하고 가성비가 좋다는 것이다.


‘보는’ 스포츠 야구와 ‘하는’ 스포츠 러닝의 인기에 유통업계도 덩달아 들썩이고 있다. 올해 사상 첫 1000만 관중을 돌파한 한국프로야구 경기장 주변 편의점 매출이 치솟고 프로야구 굿즈도 잘 팔리고 있다. 최근 ‘오런완’(오늘러닝완료)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러닝 크루가 많아지면서 ‘러닝코어’(러닝복을 일상복으로 입는 패션 트렌드)가 유행하고 있다. 유통가는 야구나 러닝 관련 다양한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야구장 옆세권 ‘홈런’, 굿즈로 사로잡은 프로야구

프로야구의 인기에 야구장 인근의 마트와 편의점 등 오프라인 점포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대폭 올랐다. 노브랜드 버거 SSG랜더스필드점의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10%, 부산 사직구장 바로 앞에 있는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 아시아드점의 델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6% 올랐다.

‘GS25 X LG트윈스 특화매장’ 전경. GS리테일 제공

특히 편의점의 매출 증가세가 확연하다. 업계에 따르면 8개 구장에 입점하거나 인근에 위치한 편의점 4사(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의 개막 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편의점 업계는 특히 프로야구를 활용한 이색 마케팅에 힘을 줬다. GS25는 한화이글스에 이어 지난 8월 GS25잠실타워점에 유니폼 및 유광점퍼, 공식 응원봉, 리유저블백 등을 판매하는 LG트윈스 특화 매장을 열었다. 세븐일레븐은 140명의 선수로 구성된 ‘KBO 프로야구 콜렉션카드’를 출시해 3일 만에 100만팩이 모두 완판됐다.

세븐일레븐의 KBO 프로야구 컬렉션 카드로 지난 6월 출시 3일 만에 1차 물량 100만팩(팩당 3장)이 완판됐다. 세븐일레븐 제공

업계는 야구가 ‘아저씨 팬층’이 두텁던 스포츠에서 MZ세대가 좋아하는 스포츠로 완벽히 탈바꿈했다고 진단한다.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가 팬 고령화를 우려하는 것과 비교하면 독특한 문화다. 지난 8월 KBO 올스타전 티켓 구매자는 20대 여성이 39.6%, 30대 여성은 19.1%로, 2030 여성이 절반을 넘겼다.

특히 젊은층이 관련 상품을 아이돌 ‘굿즈’처럼 소비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대표적으로 두산 베어스와 인기 캐릭터 ‘망그러진 곰’의 컬래버 굿즈는 온라인 선공개 후 10여 분 만에 매진됐다.

패션·여행업계도 야구 인기에 편승했다. 바람막이와 후드티 등으로 이뤄진 ‘본투윈 x KT 위즈’, ‘에이치덱스 x 롯데자이언츠’ 무신사 에디션은 각각 오는 16일, 17일에 발매된다. 지난 8월 인터파크트리플은 창원 NC파크 내야석 입장권과 야구장 근처 숙소를 결합한 여행 패키지 상품을 판매했다.

‘러닝족’ 겨냥 본격화… 매장 리뉴얼·명품 협업까지

‘보는 스포츠’에 야구가 있다면 ‘하는 스포츠’에는 러닝이 핫하다. 저녁이면 공원과 도심 곳곳에서 달리는 러너들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증샷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에 스포츠 웨어 업계가 고삐를 죄는 중이다.

러닝의 인기는 실제 매출 및 거래액에서 드러난다. 지그재그는 지난달 26일부터 9일까지인 최근 2주간 러닝화 거래액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890%로 집계했다. 백화점 3사(현대 롯데 신세계)의 지난달 러닝화 카테고리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5.8%, 20%, 35.5% 올라 스포츠 매장이 백화점 ‘매출 효자’로 등극했다.

매장을 리뉴얼해 오픈한 신세계백화점 하남점 ‘나이키 라이즈’ 매장 내부 모습. 신세계백화점 제공

백화점들은 매장을 잇따라 리뉴얼하고 러닝복과 러닝화 등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중이다. 신세계백화점 하남점은 지난 1일 기존 나이키 매장을 ‘나이키 라이즈’ 매장으로 리뉴얼했다. 광주신세계는 최근 기존 뉴발란스 매장을 리모델링해 102평 규모 러닝 특화 매장 ‘메가샵’을 오픈했다. 전국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중·장거리 러닝화 ‘퓨어셀 SC 트레이너’, ‘530SG’ 등 인기 모델을 단독 판매한다.

러닝화를 일상복에 매치하는 ‘러닝코어(running+core)’현상도 나타난다. 최근 2주간 지그재그의 애슬레저·스포츠 선글라스 거래액은 각각 65%, 113%나 늘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과거 고프코어(아웃도어 의류를 일상복으로 입는 것)와 블록코어(축구 유니폼에 영감을 받은 패션)에 이어, 러닝코어 역시 트렌드가 됐다”고 말했다.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와 온러닝의 협업 아웃도어 운동화. 로에베 제공

‘가성비’ 대표 운동인 달리기가 ‘크루’를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고가 상품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사람도 늘었다. 이에 명품 브랜드 간 협업 사례도 잇따른다. 스위스 러닝화 브랜드 온러닝과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가 협업해 선보인 스니커즈 ‘클라우드틸트 2.0’, 프랑스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 살로몬과 메종 마르지엘라의 컬래버 제품 ‘MM6 메종 마르지엘라 x 살로몬 X-ALP’ 등이 대표적이다.

선호 분야 몰두하는 ‘디깅러’, 가성비 추구

스포츠를 품은 각종 마케팅이 유통가의 실적 확대를 이끈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로는 관심 분야에 몰입하는 ‘디깅(Digging)러’의 등장이 있다. 디깅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소비자로, 취미 레저의 일상화를 추구하며 취향에 맞춰 관련 브랜드에서 적극적인 소비에 나선다. 롯데 자이언츠 팬인 김모(23)씨는 “유니폼이 집에 다섯 개 정도 있다”며 “키링이나 인형을 선수에 맞춰 직접 만들어 SNS에서 판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다른 문화 활동보다 싼 ‘가성비’를 꼽는다. 물가 상승으로 영화관, 뮤지컬, 콘서트 등 다른 여가 활동은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지만, 야구장은 가격 상승세가 비교적 덜하다. 현재 국내 야구장의 평균 객단가는 1만5226원이다. 영화 티켓 평균 가격과 비슷하고, 공연장 평균 가격보다 절반이나 싸다. 1만5000원만 내면 3시간 동안 먹고 마시며 응원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러닝도 마찬가지다. 앞서 유행했던 골프나 테니스의 경우 고가 장비와 라운딩 비용으로 경제적 부담이 컸다. 하지만 러닝은 러닝화와 운동복만 챙기면 되기 때문에 투자비용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또 팀 단위로 움직여야 하는 축구나 농구 등과 달리 혼자서도 운동할 수 있고 운동 시간도 본인이 조절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전문가들은 러닝의 인기에 대해 “고물가 시대의 가성비 트렌드가 맞물리면서 팬데믹 이후 유행했던 골프나 테니스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러닝 인기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