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근(54) 선교사는 2022년 3월 유럽으로 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였다. 그는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피란민 구호 사역을 벌였는데 2개월가량 머물며 같은 일을 하는 한인 선교사를 많이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선교사 중엔 한국교회의 후원이 끊긴 이른바 ‘고립 선교사’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선교 후원의 규모가 쪼그라들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상황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교회나 교단과의 파송 관계가 끊긴 이도 많았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는 한국에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선교지에서 삶의 보금자리를 일궜으니까, 선교지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였으니까.
이 선교사로부터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였다. 일산광림교회(박동찬 목사) 파송 선교사인 그는 당시 국민일보와 월드비전, 일산광림교회가 함께하는 ‘밀알의 기적’ 캠페인을 위해 국민일보 취재진과 함께 하노이를 방문했었다. 이 선교사는 자신이 벌이는 사역을 설명하면서 이 일의 거점 역할을 하는 단체 ‘미니스트리 더함께’를 소개했다.
“유럽 방문을 마치고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2022년 12월에 단체를 만들었어요. 중소형 교단이나 작은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 중에 고립 선교사가 돼버린 이가 많더군요. 미니스트리 더함께는 이 같은 상황에 부닥친 고립 선교사를 한국교회와 다시 연결해주는 단체입니다. 그동안 고립 선교사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했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이들을 섬기는 일을 벌일 계획이에요.”
이 선교사가 고립 선교사를 지원하는 일에 적극 나서기로 결심한 데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해외 선교에 헌신하려는 청년 선교사의 수가 줄면서 이미 파송된 선교사들의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선교사는 “해외 선교에 헌신하는 청년 선교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미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를 더 확실하게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한국교회 선교의 힘이 보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찬양 사역자였던 이 선교사는 2008년 5월 몽골 선교사로 파송됐다. 2018년 2월까지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선교사로서 그가 겪어야 했던 고충은 엄청났다. 현지 아이들을 상대로 장학 사업 등을 벌이고 싶었지만 경제적 어려움 탓에 수월치 않았고 자신의 자녀들도 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자녀들은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K팝을 대표하는 가수가 됐다. 음반을 낼 때마다 가요계를 뒤흔들어 놓는 남매 듀오 악뮤(이찬혁·이수현)가 그의 자녀들이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해요. 제가 몽골에서 겪은 어려운 시간은 악뮤를 만들기 위한 과정 아니었겠냐고. 저는 이 말에 얼마간 공감하긴 하지만 완전히 동의하진 않아요. 제가 겪은 어려움엔 하나님의 또 다른 뜻도 담겨 있었어요. 언젠가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과거의 저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그런 선교사들을 도우라는 것이었죠. 제가 미니스트리 더함께를 만들게 된 것엔 이런 하나님의 명령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요.”
하노이(베트남)=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