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군 월급 반반씩 나눠 갖자” 모의 후 대리 입대 사상 첫 적발

입력 2024-10-15 01:12
군인들이 2021년 11월 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 인근을 지나가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 연합뉴스

군대 일반병 월급을 나눠 갖기로 모의하고 타인 명의로 대신 입대한 20대 남성이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대리 입영 사례가 적발된 건 1970년 병무청 설립 후 처음이다. 대리 입영을 막지 못한 병무청의 관리 소홀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신분증 확인만 거치는 허술한 현행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춘천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홍승현)는 지난 8일 병역법 위반·위계공무집행방해·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를 받는 조모씨를 구속기소했다. 조씨는 원래 입대해야 할 최모씨와 공모해 군인 월급을 반반씩 나눠 갖기로 하고, 의식주 해결을 위해 대리 입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씨는 20대 후반, 최씨는 20대 초반이다. 체형은 서로 다르지만 외모는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지난 7월 조씨는 최씨 신분증을 들고 강원 홍천의 한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군 입영절차에 따라 병무청 직원은 사병 인도·인접 과정에서 신분증을 검사해 신원을 확인한다. 그러나 병무청 직원이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조씨가 최씨 이름으로 입대했다. 조씨와 최씨는 인터넷을 통해 접촉한 후 대리 입영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씨가 지난 9월 병무청에 ‘두렵다’고 자수해 사건이 적발됐다. 병무청은 즉각 조치에 나섰고, 조씨는 육군 제1수송교육연대에서 체포됐다. 조씨는 대리 입영 후 약 3개월간 군 생활을 했다.

최씨는 경찰·검찰 조사에서 “대리 입영이 잘못인 걸 알았기에 겁이 나 자수했다”고 진술했다. 조씨는 “군대에서 월급을 많이 주니까 의식주를 해결하려 입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는 과거 본인 이름으로 입대했다가 정신건강 문제로 전역한 이력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경찰청은 병무청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고 지난달 말 조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고, 최씨는 불구속 송치했다. 검찰은 조만간 최씨도 기소할 방침이다.

그동안 ‘정신질환’ 위장 등 병역 회피 관련 범죄는 꾸준히 발생했다. 그러나 대리 입영이 실제 이뤄지고, 적발된 사례는 처음이라고 병무청은 설명했다.

대리 입영 문제가 드러나면서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일반병 입대 과정에서 병무청 인도·인접 절차는 오직 신분증을 기준으로 진행된다. 현장 직원들은 실제 입대할 사병과 신분증의 인물이 동일인인지 명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병욱 상명대 군사안보학과 교수는 “입영 확인 절차에 허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정교한 시스템 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형호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는 “현역 입영 대상자들의 신체 정보 등을 공유할 수 있는 별도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무청은 대리 입영 방지를 위해 강화된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병무청 관계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홍채 인식이나 안면 시스템 도입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조씨 신분을 확인하지 못한 병무청 직원을 재판 결과에 따라 징계 등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재현 신지호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