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헌법재판관 정족수 부족으로 본인의 탄핵 심판이 정지되는 건 부당하다며 낸 가처분 신청을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였다. 재판관 정족수 7명을 채우지 못하면 사건 심리도 불가능하도록 정한 규정 효력이 정지되면서 이른바 ‘헌재 10월 마비’ 사태는 피할 수 있게 됐다.
헌재는 14일 이 위원장이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의 효력을 멈춰 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헌재는 “재판절차 정지로 이 위원장 직무 정지 상태가 장기화되면 업무 수행에도 중대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며 “해당 조항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손해를 입을 위험이 있고, 3명 재판관 퇴임이 임박한 만큼 손해를 막을 긴급성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23조 1항은 헌법재판관 총원 9명 중 최소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도록 정한다. 하지만 오는 17일 퇴임하는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 김기영 재판관 후임자가 여야 정쟁 속에 결정되지 않으면서 18일부터는 6명 재판관만 남아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 마비 사태가 현실이 됐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이 위원장은 지난 8월 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됐다. 그는 지난 10일 “23조 1항 탓에 탄핵 심판이 열리지 못하고 무기한 직무 정지에 놓이는 것은 부당하다”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재판관 공석으로 인한 재판 지연 등 기본권 침해는 이 위원장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재판관 궐위로 인한 불이익을 아무런 책임이 없는 국민이 지게 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임기 만료로 인한 퇴임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임에도 재판관 공석 문제가 반복해 발생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 권리 보호뿐만 아니라 헌법 재판의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날 결정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것이다. 문제 조항의 위헌성까지 따진 것은 아니지만 7명 정족수 제한 조건이 일시 정지되면서 헌재가 심리 중인 모든 사건에 적용될 수 있다. 헌재법 23조 2항에 근거해 재판관 6명 전원이 동의할 경우 법률의 위헌이나 탄핵 여부 결정도 가능하다.
헌재는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퇴직해 재판관 공석 상태가 된 경우에 한정해 23조 1항 효력을 정지함이 상당하다”고 했다. 헌재 관계자는 “임시적 처분이지만 6명 재판관으로도 심리와 결정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