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끝날까’ 했던,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지나갔다. 이어서 여전한 방식으로 가을이 왔다. 일터에서는 결산으로, 학교에서는 입시로, 한 해 열심히 수고한 결실을 맺는 계절이다.
우리는 ‘열심’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심지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자고 한다. 뭐든 열심히 해야 좋은 열매를 맺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 열심이 많은 수확을 보장해줄까. 그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잦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억울할 날이 있다.
성경에서 열심으로 유명한 인물 중 하나가 예후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아합의 집을 치는 임무를 수행했다.(왕하 9:7) 예후는 이 명령을 이행하는 데 진심이었다. 아합의 아들 요람 왕, 외손자 아하시야 왕, 아내 이세벨을 죽이고(왕하 9:24, 27, 33) 그 후손들과 바알 숭배자들을 전부 멸했다.(왕하 10:7, 14, 25~28) 그는 이 모든 것을 ‘여호와를 위한 내 열심’이라고 자랑했다.(왕하 10:16)
하나님은 예후의 열심을 인정하시며 4대까지 왕위를 약속하셨다.(왕하 10:30) 그러나 예후는 하나님의 율법을 ‘전심으로’ 지키지는 않았다. 여로보암 때부터 계속된 금송아지 숭배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후는 자기 일을 열심히 했지만 하나님께 전심으로 순종하지 않았다.
열심은 말 그대로 ‘뜨거운 마음’이다. 히브리어로 보면 열심은 뭔가를 너무 가지고 싶거나 빼앗기기 싫어서 타오르는 마음이다. 그래서 열심의 뿌리는 소유욕이다. 반면 전심은 ‘온전한 마음’이다. 나뉘지 않고 어떤 한 곳에 집중된 마음을 말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마음을 다하여’, 즉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한 중학생의 사연이다. 이 학생은 어려서부터 뭐든 잘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다. 공부도 운동도 잘하고 싶었고 친구들에게도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재앙 같은 사건에서 아이는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며 슬퍼하고 원망했지만 이를 계기로 가족이 모두 교회로 인도됐다. 아이는 이제 하나님을 믿으니 고난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우울과 불안이 아이를 괴롭혔고 엄마도 많이 아팠다. 게다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덩치 큰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사건이 계속 찾아오는 상황에서 학생이 할 수 있는 것은 교회에서 배운 큐티뿐이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학생은 날마다 자기 마음을 주님께 아뢰며 말씀을 묵상했다. 그리고 묵상한 것을 매일 큐티책에 기록했다. 뭔가를 얻으려고 열심히 큐티를 한 것이 아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고난이 있으니 살기 위해 전심으로 하나님께 집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큐티 기록이 그가 학교 폭력의 피해자임을 증명해주는 귀중한 증거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교회 선생님이 기도와 손발이 가는 수고를 통해 전심으로 섬겨주셔서 학생은 힘든 시간을 통과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매일 큐티한다. 최근에는 바알을 섬긴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이 재앙을 선언하시는 예레미야 본문을 묵상하며 학생은 아직도 돈과 게임, 동영상 등의 바알과 성적과 칭찬의 우상이 자기 안에 가득하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이런 우상들이 자기를 구원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날마다 큐티를 먼저 하며 하나님께 가장 귀한 시간을 드리겠다고 결단하며 적용하고 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지혜롭다고 말씀하신다.(마 7:24) 그래서 이 학생처럼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어떤 사건과 고난이 와도 또는 어떤 성취와 성공을 얻어도 삶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 사람, 거기에 집중하는 사람이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한 해 열심히 수고한 결실을 거두는 가을에 하나님을 향한 전심을 회복함으로 진정한 감사와 기쁨을 누리는 우리가 모두 되길 소망한다.
김양재 우리들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