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지 3년2개월 만이다. 그동안 내수 부진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금리인하를 주저했던 요인들이 완화됐기 때문이다. 먼저 지난달 미 연준이 0.50% 포인트의 빅컷을 단행하고 추가 인하를 예고함에 따라 외환시장에 대한 부담감을 덜 수 있었다. 우려했던 가계부채 증가세와 주택시장 상승세도 다소 꺾였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은의 물가목표인 2%를 하회하면서 물가안정에 대한 자신감이 커진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이제 관심은 향후 금리인하 폭과 속도에 쏠리고 있다. 금리정책은 시장금리를 변화시켜 기업과 가계의 투자나 저축, 소비 등 실물경제는 물론 주식이나 주택 등 자산가격에 영향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소비나 투자, 자산매입 등은 중장기적 시계에서 여러 요인을 고려해 결정되기 때문에 기업이나 가계 입장에서는 이미 예상했던 이번 금리인하보다는 앞으로의 금리 방향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최근처럼 대내외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데다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는 한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한은이 자칫 잘못된 신호를 주거나 시장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면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경제의 변동성은 크게 확대될 것이다. 한은이 효과적으로 시장과 소통하며 향후 금리 수준에 대한 기대를 안정적으로 통제해야 하는 이유다.
한은은 금융시장과의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 금리인하 효과를 다방면으로 짚어봐야 한다. 정부의 강력한 대출억제 정책 등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되고 주택시장 상승세도 주춤한 모습이지만 금융 불안 위험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내수는 대내외 불확실성, 과도한 부채, 인구감소 등 다양한 원인에 기인해 부진을 지속하고 있어 한 번의 금리인하로 회복되기 어렵다. 그러나 금리인하와 함께 높아진 추가적 인하 기대는 시장의 금리 전망을 바꾸고 점진적으로 기업이나 가계의 경제 행위에 영향을 줘 대출이나 부동산, 내수 움직임을 변화시키게 할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은이 시장과 자신 있게 소통하며 시장의 기대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시장이 수긍할 만큼 정밀한 분석과 명확한 판단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가계나 기업과도 적극적 소통이 필요하다. 지정학적 위험, 공급망 분절, 기후위기 등으로 물가상승률이 팬데믹 이전보다 높은 수준에 머물면서 글로벌 금리가 과거의 초저금리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는 향후 연준이 상당 폭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우리보다 금리 수준이 높아 금리역전이 지속될 것이며 가계부채 문제는 당장 해결하기 쉽지 않다. 만일 경제주체들이 금리인하기 진입을 새로운 레버리지 창출기회로 인식한다면 경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금리인하를 재무구조를 건전하게 정비하고 내실을 다지는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올바른 경제인식과 판단을 도와주는 다양한 소통경로를 개발하고 설득력 있는 소통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정부와의 소통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금융안정은 한은의 양대 정책목표지만 금리는 매우 제한적인 정책수단이다. 정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거시건전성 정책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금리인하 부작용을 완화하고 금융안정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책 당국 간 엇갈린 정책 신호로 시장에 혼란을 초래하고 시장금리를 왜곡하는 일도 방지해야 한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금리인하기에 진입하고 있다. 가계와 기업, 금융시장과 정부를 아우르는 한은의 소통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