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거북은 수중 생활에 가장 특화한 파충류다. 거대한 허파를 지녀 4~7시간가량 잠수할 수 있고, 물속에서 잠을 잔다. 육지에선 몸통으로 체중을 견뎌야 하는 탓에 장기가 눌려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된다. 바다거북은 평생을 바다에서 살지만, 알을 낳을 때만은 육지로 올라온다. 그것도 자신이 태어났던 그 바닷가 모래밭으로. 이런 바다거북을 중국에선 하이구이(海龜)라고 부른다.
중국은 해외로 나간 인재들도 하이구이라고 칭한다. 넓은 바다에서 성장한 ‘바다거북’이 고향으로 돌아와 ‘멋진 알’을 낳아주기 기대하는 것이다. 하이구이를 끌어들이는 정책은 2008년 ‘첸런(千人) 계획’으로 대담해졌다. 중국 공산당은 해외 인재 1000명을 등용해 선진국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조직적 도둑질, 기술 탈취라는 비난이 거세졌고 미국 등에서 처벌받는 사례가 속출했다. 비판이 잇따르자 중국 정부는 2019년 첸런 계획을 폐지했다. 다만 공식적으로만 그렇고, 해외 인재·기술 사냥은 한층 은밀해졌다. 중국은 막대한 돈과 보장된 명예를 미끼로 내건다. 영입 대상은 자국 출신 유학생·연구원에서 해외 고급인재로 넓어졌다. 분야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나노, 바이오 등으로 광범위하다.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이런 식의 프로그램이 2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대표적 사례가 나노기술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찰스 리버 하버드대 교수다. 미국 연방수사국은 2020년 1월에 리버 교수를 전격 체포하고 기소했다. 중국 정부는 교묘히 접근했고 개인 장려금 15만8000달러, 연구지원금 80만 달러, 월급 5만 달러, 우한이공대·하버드대 합동 나노연구소 기금 174만 달러 등을 제시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던 그는 ‘과학기술 스파이’로 전락했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달 27일에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던 이들이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이들이 중국 지방정부로부터 4000억원가량 투자금을 받아 청두가오전이라는 반도체 기업을 세우고, 공정기술 등을 빼돌렸다고 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210건(국가핵심기술 유출 55건)에 피해 추정액은 39조원이나 된다.
첨단기술을 둘러싼 암투는 이미 ‘스파이 전투’ 수준을 벗어났다. 경제·기술 패권 전쟁으로, 경제안보 전쟁으로 덩치를 키우는 중이다. 기술을 손에 쥔 나라, 공급망을 지배하는 나라가 모든 걸 다 가지기에 치열한 국가 대항전이 펼쳐지고 있다. 이 전쟁에서 가장 핵심적 전선은 ‘인재·기술 방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인재를 키우고, 기술을 개발해도 빼앗기는 건 순식간이다. 그래서 각국은 ‘수비’에 엄청난 노력을 쏟는다. 최근 영국 국내정보국은 주요 대학 부총장을 모아놓고 연구결과·기술을 훔치는 스파이에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국가 안보 침해라는 표현까지 썼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0월 첨단기술 보호계획을 마련하면서 첨단 반도체, AI, 양자기술, 생명공학을 보호대상으로 지정했다. 미국 정부는 과학기술 분야 인재 확보를 위해 8000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배정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는 눈뜨고 코 베이고 있다. 2012~2021년 해외 유출 이공계 인재는 34만명에 달했다. 미국 시카고대 싱크탱크 매크로폴로는 2022년에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분야 인력의 40%가 해외로 떠났다고 발표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별 두뇌유출 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 4.66점(10점 만점)에 그쳤다. 0에 가까울수록 고급인재 유출이 심각함을 의미한다. 우리의 바다거북은 돌아오기는 할까. 돌아와 알을 낳을 모래밭이 있기는 한가.
김찬희 편집국 부국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