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은 고정? 관념을 깨뜨려라!

입력 2024-10-15 03:11
게티이미지뱅크

2.07%. 지난해 기준 최근 10년 퇴직연금 연 환산 평균 수익률이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382조4000억원이다. 매년 10% 넘게 적립금 규모는 불어나고 있지만, 수익률은 제자리걸음이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하고 있다. 맥킨지 한국사무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12%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치 20∼30%의 절반 수준이다.


금융투자업계가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을 위해 퇴직연금 전용 상품 ‘디딤펀드’를 출시했다. 주식과 채권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해 예 적금보다 높은 수익을 내면서도 안정성을 확보한 상품이다. 사별로 공동 브랜드 ‘디딤’을 붙인 단 하나의 대표 펀드만 출시해 운용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매년 꾸준히 성장하는 퇴직연금 시장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적립금 87% 예 적금에 방치돼

퇴직연금 수익률이 물가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한 이유는 자산 대부분이 예 적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방치돼 있어서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적립금(382조4000억원) 중 87.2%(333조3000억원)가 원리금보장형 상품인 것으로 집계됐다. 주식 등 실적배당형은 12.8%(49조1000억원)에 그쳤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DB)와 확정기여형(DC)형, 개인형IRP로 나뉜다. DB형이 원리금보장형 상품 편입 비중이 95.3%로 가장 높았고 DC(81.9%) 개인형IRP(72.1%) 등 순이었다. 수익률은 원리금보장형 상품 편입 비중이 낮은 순서대로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특히 DB형의 경우 회사가 정해진 금액을 줘야하므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위험자산 비중을 높이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DC나 IRP 가입자라도 퇴직연금 운용 지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무관심해 내버려 두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에 2022년 7월 도입된 것이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이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로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자동으로 노사가 합의한 방법으로 자금이 굴러가도록 한 것이다.

다만 이 역시 수익률 개선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말 기준 전체 디폴트옵션 적립금 32조9095억원 중 원리금보장형 비중은 89.2%(29조3478억원)를 차지했다. 퇴직연금 가입자도 원금손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노후 생활이 걸린 퇴직연금을 주식 등에 투자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작용했다.

디딤펀드, 퇴직연금 수익률 높여줄까

금투업계가 출시한 디딤펀드는 이름뿐만 아니라 전체 자산에서 주식은 50%, 투자부적격채권은 30% 미만으로 편입해야 하는 규칙을 적용받는다. 안정적이면서도 물가상승률 이상의 수익을 내는 초과수익을 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가상승률 이하의 수익률이 누적되면 결국 노후자산을 갉아먹게 되는 결과를 가져와서다.

자산 배분이라는 큰 틀은 공유하지만, 운용사별 차별화를 꾀했다. 먼저 삼성자산운용 ‘삼성디딤밀당다람쥐’는 매크로 시장 상황을 고려해 주식과 채권의 투자 비중을 조절한다. 투자대상이 폭넓은 것이 특징이다. 미국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국에도 투자해 최적의 자산 배분을 찾겠다는 게 삼성운용의 설명이다. 투자는 운용 보수가 낮은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디딤올웨더TRF’은 글로벌 주식, 채권, 대체자산 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KB자산운용 ‘KB디딤다이나믹자산배분’은 먼저 글로벌 채권 투자를 통해 안정적인 이자수익을 확보하고 글로벌 주식 투자 비중을 30~50% 범위에서 조정해 초과 수익을 추구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목표 수익률을 제시한 곳도 눈에 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한국투자디딤CPI+’는 연간기준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보다 4.5% 포인트 높은 수익을 낸다는 계획이다. 주식과 채권을 주축으로 하면서도 금과 미국 물가채, 호주 주식 ETF, 리츠, 인프라 등을 20% 비중으로 투자한다. 신한자산운용 ‘신한디딤글로벌EMP’도 물가상승률에 3% 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이 밖에도 에셋플러스자산운용과 흥국자산운용이 연 7% 이상의 수익을 내겠다고 밝혔다.

IBK자산운용 ‘IBK디딤인컴바닐라EMP’는 전 세계 배당형 자산에 분산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채권과 대체자산 등 분기별 배당수익이 발생하는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쌓아 가겠다는 전략이다. 우리자산운용 ‘우리디딤미국테크와바이오’는 국내 채권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확보하고 미국 성장주 투자를 통해 추가 성과를 노린다.

초반 분위기는 미지근하다. 기존 자산배분 펀드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세제 혜택 등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는 정부의 결정이 필요하다. 디폴트옵션으로 아직 승인되지 않은 것도 미지근한 분위기에 한몫한다. 상품 출시를 주도한 금융투자협회는 디딤펀드의 운용 실적이 쌓이면 디폴트옵션 편입을 위한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디딤펀드가 디폴트옵션으로 승인받으면 기계적인 자금 유입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