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국민 우려’를 언급하며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을 공개 요구한 뒤 아무런 공식 대응 없이 침묵했다. 당장 16일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당정이 갈등하는 모습으로 비칠 여지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의 독대가 예정된 상황에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포함한 예민한 문제들이 공개 거론되는 데 대한 불편함도 엿보인다.
대통령실은 한 대표가 인적 쇄신을 말한 이튿날인 13일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과거 대통령의 인사권과 결부된 비판적 주장을 꼼꼼히 반박하던 것과 일견 차이가 있는 모습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8월 외교안보라인 개편 당시 특정인을 위한 연쇄 인사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터무니없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의료계와 정치권이 의료공백 장기화를 지적하며 보건복지부 장차관 교체를 요구한 지난달에는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라고 일축했다.
대통령실의 무대응은 결국 인적 쇄신을 요구한 주체가 ‘당정 일체’ 관계 속에 있는 여당 대표이고, 이에 대한 반응이 선거 국면 당정 갈등을 부각할 수 있다는 판단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 관계자는 “만일 대통령실이 여당 대표의 말에 반박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은 어떻게 바라보겠느냐”며 “선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순방 중 한 대표가 김 여사의 공개 행보 자제, 검찰의 납득할 만한 김 여사 처분을 말했을 때에도 반응이 없었다.
공식적인 무대응 기조 물밑에선 용산을 겨냥한 발언 수위를 높이는 한 대표에 대한 아쉬움도 감지된다. 한 대표가 민심을 이유로 김 여사와 관련한 쇄신을 이어가지만 한편으로는 애초 부풀려져 있던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실제보다 키우는 격이라는 시각이다. 인적 쇄신에 대해서는 과연 용산 내 어떤 참모를 특정한 것인지, 이른바 ‘여사 라인’이 소문 영역을 넘어 충분히 확인된 결과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한 대표가 ‘구태 정치’로 지목한 명태균씨의 경우 대통령실의 특정 참모를 통해 대통령 부부와 소통한 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께 지목된 김대남 전 행정관은 긴밀한 소통을 과시하듯 발언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 부부와 아무런 친분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누굴 이른바 ‘비선’으로 언급한 것인지 쉽게 추정하기도 어렵고, 대응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당분간 ‘로키’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와 관련한 국민 여론을 살피며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 한 관계자는 “지금 거론되는 것들은 용산이 모르는 문제가 아니다”며 “(사과 등은) 결국 대통령 부부가 결단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