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외교관들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제시한 ‘남북 두 국가론’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해선 통일 포기가 아니라 남한에 더 공세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했다.
류현우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는 10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관 ‘탈북 외교관 초청 긴급 토론회’에 참석해 임 전 실장의 두 국가론을 거론하며 “반통일·반헌법적으로 말한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임 전 실장은 지난달 19일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남북한이 두 개의 국가란 사실을 수용해야 한다”며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고 제안했다.
류 전 대사대리는 “물론 현 상태에서 통일은 어렵다”면서도 “(통일은) 민족, 역사가 결정할 문제다. 임 전 실장이 그런 말 할 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발언은 보수와 진보, 종교와 신앙을 초월해서 모두가 문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북 외교관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남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것과 임 전 실장이 말한 ‘평화 공존론’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낸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김정은이 주장한 적대적 두 국가의 본질은 핵무기로 남한을 완전 전멸시켜 통일하려는 전략”이라고 발언했다. 태 사무처장은 “두 국가를 수용하면 평화와 공존을 거치는 게 아니라 우리 생명과 안전도 불안해진다”며 “완전히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관계로 들어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출신인 김동수 민주평통 인권·탈북민지원분과위원회 간사는 “적대적 두 국가는 김정은의 호전성과 취약성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며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에 따른 대남 적대 정책 추진에 집중하면서 핵·미사일 도발 등 공세적 행보를 계속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지적하는 인권 문제에 심각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무참사는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김정일 때는 인권상황이 나아졌다고 선전하거나 보안원들을 상대로 지나치게 인권침해를 하지 말라는 지시가 하달됐다”며 “북한 내에서는 (인권 문제를)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심각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태 사무처장도 “인권으로 북한을 압박하면 내부에서 상당히 많은 것이 변한다”며 “북한을 정상으로 만들려면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