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질병 ‘고통’받는데… 선교사 부모 돌봄 사역 제자리 맴맴

입력 2024-10-11 03:00 수정 2024-10-17 16:21
서울 오륜교회 파송 선교사 부모가 교회로부터 명절 선물을 받은 모습. 오른쪽 사진은 예장합동 총회 세계선교회(GMS)가 2009년 선교사 부모를 돌보기 위해 설립한 GMS화성요양원 전경. 오륜교회, GMS 제공

A선교사는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중증 치매를 앓는 어머니는 그가 떠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듯했다. 아들 손을 잡은 채 창밖을 바라보는 어머니 모습은 평온해 보였지만 A선교사의 마음은 무거웠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 그는 조용히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대답 없는 어머니의 손을 잡은 그는 죄책감으로 가슴이 아팠다.

A선교사는 선교지로 파송된 지 25년 가까이 됐다. 하지만 파송 단체나 교회에서 그의 어머니를 찾거나 돌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10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그는 “이른바 선교사 멤버케어라는 영역이 여전히 선교사 자녀(MK)에만 국한한 것 같다”며 “선교사 부모(MP·Missionary Parents) 사역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국만리 있는 것만으로도 불효 느껴

선교사들은 해외 선교지에서 사명을 다하는 동안에도 고국에 있는 부모를 생각하면 송구함과 책임감을 떨치기 어렵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선교계에서 MP 사역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2011년 한국교회 주요 교단 선교 실무자들이 MP 사역 활성화를 논의한 바 있다. 당시 교단들은 선교사 부모를 위한 위로와 돌봄 사역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역교회에 해당 사역을 위탁하는 등의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10여년이 흘렀지만 MP 사역엔 큰 진전이 없다.

GMP선교회 대표를 지낸 임태순 선교사는 “부모가 질병이나 외로움으로 고통받을 때 타국에 있는 선교사들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부모가 불신자인 경우 자녀를 하나님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며 “선교사들이 마음의 짐을 덜고 사역에 집중하려면 선교사 부모를 돌보는 사역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MP 사역의 필요성은 해외선교 붐이 일었던 1980년대에 해외로 떠난 선교사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부모 세대의 연령이 적게는 80세에서 많게는 100세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A선교사의 사례처럼 부모가 중증 질환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고, 부모가 별세했을 때 해외에 머물던 자녀 선교사가 한국으로 바로 귀국할 수 없기 때문에 장례 절차를 대신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문제는 선교사들의 부모가 연로한 만큼 선교사 본인도 은퇴 후를 걱정할 나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MP 사역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임 선교사는 “베이비붐 세대 선교사들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선교단체들이 소속 선교사의 은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느라 부모 사역까지 감당할 여력이 안 된다”고 분석했다. 향후 은퇴 선교사들이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MP 사역의 우선순위는 더 뒤로 밀릴 수 있다.

선교사 자신과 멤버케어를 제공하는 선교단체, 후원자들이 가진 왜곡된 인식도 MP 사역의 장애물이다. 인터서브코리아 대표를 지낸 조샘 선교사는 “자신이 모든 희생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선교사가 적지 않다”며 “선교사들이 가족 돌봄과 같은 사적인 문제를 선교단체나 교단선교부에 요청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후원자들이 선교사에게 기대하는 헌신적 이미지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임 선교사도 “부모 돌봄을 이유로 사역을 잠시 중단하거나 귀국하면 후원이 끊길까 봐 걱정하는 선교사들이 있다”며 “상황이 이렇기에 MP 사역 활성화를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선교사 부모 돌봄 실천하는 단체와 교회

이런 가운데 MP 사역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교회와 선교단체도 있어 눈에 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는 2009년 선교사 부모를 위한 체계적 돌봄을 목표로 경기도 화성에 GMS 화성요양원을 설립했다. 현재 8명의 선교사 부모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 서울 오륜교회(주경훈 목사)는 최근 추석 명절 기간 국내 거주 선교사 부모 23가정을 찾아 섬기는 사역을 펼쳤다. 교회 성도들은 손편지와 홍삼 세트를 들고 방문했다.

인터서브코리아(대표 공갈렙 선교사)는 17년째 부모돌봄팀을 운영 중이다. 남서울은혜교회(박완철 목사)의 은퇴 장로와 권사들이 부모돌봄팀에 지원해 선교사 부모들과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돌봄 활동을 이어간다. 매년 두 차례 부모를 모시고 식사와 격려의 시간을 갖고 명절마다 선물을 보내는 등 선교사 부모들과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오엠(대표 조은태 목사)도 2018년부터 이와 유사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멤버케어 담당 허정숙 선교사는 “내년에는 MP 사역을 더 확장할 계획”이라며 “몇몇 선교사들이 신앙이 없는 부모님이 교회에 가는 것을 기도 제목으로 보내고 있다. 선교사 지원 사역에 선교사 부모님 가정 심방 등을 추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손동준 이현성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