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역사에서 히스기야 왕은 다윗 이후 300년 만에 등장한 경건한 왕이었습니다. 또 여호사밧 왕과 더불어 종교개혁을 단행해 훌륭한 왕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왕하 18:4)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은 철저했습니다.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뱀을 ‘자기들을 광야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으로 여기며 분향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놋뱀을 ‘느후스단’ 즉, 놋 조각일 뿐이라 칭하며 완전히 깨뜨리는 등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왕이니까 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히스기야는 왕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신하들과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역사는 그의 아들이 므낫세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므낫세를 악한 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므낫세는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다시 세우고 성전에 우상숭배를 위해 제단을 쌓았습니다. 또 여호와의 성전 앞에 일월성신인 하늘과 해와 달을 섬기는 단을 세웠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목사 아들이 예배당 앞에 돌부처를 세워놓은 셈입니다.
어떻게 히스기야 같은 왕의 아들이 악한 길을 가게 됐을까요. 그 답이 오늘 본문에 안에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에서 생명을 15년 연장받습니다. 이때 바벨론 신하들이 이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옵니다. 여기서 히스기야가 무슨 일을 했습니까. 보물창고와 군비고, 심지어는 왕궁 안에 있는 금은보화까지 모든 걸 다 보여줍니다. 바벨론 왕이 예물과 사신을 보낸 건 우호적인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유다를 집어삼키려는 속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바벨론 사신에게 모든 걸 다 보여주고 맙니다. 사신들에게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빨리 쳐들어 와서 이것을 빼앗아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 사건을 두고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경고합니다. 히스기야 자손 중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거란 저주까지 선포됐습니다. 기도의 사람이라면 다시 자리에 엎드려 회개했을 겁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왕하 20:19) 히스기야의 마음은 이미 교만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게 이스라엘은 금은보화가 넘치는 강성한 나라가 됐고 그는 생명을 연장받아 건강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태평성대를 누린 뒤 기도를 잃어버렸습니다. 부요가 무서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건강과 평안이 두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때론 가난이 복이고, 아픔이 복입니다. 그때 가장 뜨겁게 주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히스기야는 악한 왕 므낫세를 만들었습니다. 자녀를 므낫세로 만들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백윤영 목사(광주청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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