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여름,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몰(제2 롯데월드)이 개장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인근 석촌호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면도로에서 기이한 일이 있었는데, 지름 50㎝짜리 푹 꺼진 구덩이가 생겨난 거다. 완전히 빈 구멍이 뚫리진 않았지만 아슬아슬했다. 새벽 출근길을 재촉하던 주민과 차량들이 흠칫 놀라 피해가던 모습이 생각난다.
당시 이런 실태를 기사로 썼더니 서울시 고위 공무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요지는 “지하에 묻힌 상하수관이 낡아 흔히 발생하는 별 것 아닌 일”이란 얘기였고, “왜 쓸데없이 불안감을 조성하느냐”는 항의가 이어졌다. 그의 고압적인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매일 지나가던 도로가 주저앉은 주민들의 불안감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불과 2개월 뒤의 일이었고,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던 시점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못 가 서울 송파구 석촌동 지하차도에 대형 싱크홀이 발생하자 정책 담당자들은 그제야 분주해졌다. 언론의 후속 취재가 시작되자 땅 꺼짐 현상 대책을 만들고, 지하 내부를 조사할 지표투과레이더(GPR) 장비를 도입하는 등의 조치가 이어졌다. 해마다 전국적으로 싱크홀이 발생하자 지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땅 꺼짐의 원인은 대략 3가지로 구분된다. ①노후된 상하수관 파손에 따른 누수 현상 ②매립지에서의 지반 다짐 불량 ③지하수 흐름 변화로 공동(지하 빈 공간)이 생긴 경우가 꼽힌다. 하지만 이런 원인을 알아도 제대로 대처가 안 된다는 게 문제다.
대표적으로 지표투과레이더는 굴착 없이도 지하 구조물과 특징을 시각화할 수 있는 장비지만 현재 사용되는 장비는 지하 2m까지만 탐지가 가능해 이보다 더 깊은 곳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다. 노후 관로를 탐지하는 작업 역시 마찬가지인데 예전에 묻힌 관로가 어디 있는지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태반이고, 예산 부족으로 적당히 덮고 가는 경우도 많다. 일부 업체에선 탐지 작업을 할 때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지반 침하 현상은 더 늘어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10년간 발생 건수가 전국적으로 2000건이 넘는 걸로 조사됐다. 최근에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과 부산 사상구 일대에서 싱크홀이 발생해 차량이 파손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사고 당시 영상에는 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지는 아찔한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지하공간 활용도가 커지면서 개발 과정에서 지반 자체가 약해지거나 지하 물길 흐름이 급격하게 바뀌는 것도 불안감을 키우는 원인이다. 석회암 지대와 같은 특정 지형이나 연약한 지반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지반 침하가 발생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화강암과 편마암 지대가 대부분인 우리나라는 비교적 안전했지만 최근에는 매립지 조성을 통한 신도시 건설, 지하공간의 과도한 개발, 상하수도 등 지하 시설물 노후 등으로 도심지 곳곳에 지반 침하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도 싱크홀이 발생하면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신속하게 구멍난 곳을 덮어버려서 정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그 내부 깊숙한 공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지하공간 개발은 늘고 있지만 이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해법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싱크홀의 공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불안감 조장 운운하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백상진 뉴미디어 팀장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