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사복음서 속 예수는 유대 사회에서 ‘랍비’로 불렸다. 유대교 경전인 토라의 대가인 랍비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 무리와 이곳저곳을 다니며 비유와 수수께끼로 가르침을 전했는데 예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예수를 비롯한 당시 랍비는 도제(徒弟)식으로 제자들에게 지혜를 전수했는데 이는 1세기 유대 교육 시스템의 특징 중 하나다.
랍비의 문하생으로 들어온 이들은 “가족과 고향, 가업을 떠나 24시간 내내 동고동락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체득했다. 분명 고된 과정임에도 랍비를 온전히 닮고자 했던 문하생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당대 덕담이 “당신이 당신 랍비의 먼지를 뒤집어쓰기를 빕니다”였다. 스승을 그대로 본받아 지혜로운 랍비로 성장하길 기원한다는 의미다.
미국 오리건주 브리지타운교회 설립자이자 교육 목사로 20여년간 목회해온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제자 훈련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확신한다. 전작 ‘슬로우 영성’에서 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를 이끌다 탈진을 겪고 얻은 깨달음을 소개한 그는 현재 2021년 자신이 설립한 비영리단체 ‘프랙티싱더웨이’에서 130개국 1만여 교회에 예수 영성 훈련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제자 훈련, 곧 예수를 따르는 것은 곧 평생 그분의 도제가 되는 것”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가 속한 “서구 교회의 성도 대다수가 복음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그리스도인이며 예수 제자로 사는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은 소수에 불과해서”다.
신약성경에선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도제나 제자로 통칭한다. 이들 단어는 269회 나오는 반면 그리스도인(Christian)은 단 2번 등장한다. 저자는 “복음서는 도제가 아닌 이들을 ‘무리’로 기록했다”며 “지금처럼 예수를 인정하되 그분을 따르려고 노력하지 않는 ‘세 번째 범주의 그리스도인’ 따위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복음서 저자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무리 속의 한 얼굴인가, 아니면 예수의 도제인가.’ 예수는 기독교로 개종할 사람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도제를 찾으신다”고 말한다.
예수의 도제로 거듭나기 위해 저자가 가장 중시하는 건 1세기 랍비의 문하생처럼 삶 전체를 그분 위주로 재편하는 것이다. 이 도제 훈련의 대원칙은 “평생 ‘예수와 함께’하며 ‘그분처럼 되고’ 세상 가운데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예수를 대면하며 그분의 먼지를 뒤집어쓰던 1세기 도제와 다른 상황에 놓인 21세기 현대인이 매 순간 이 원칙대로 사는 게 가능할까.
이런 의구심을 품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저자는 ‘영성 형성을 위한 생활 수칙’을 제안한다. 여기에는 “매일의 습관과 일정, 예산과 대인관계 등 삶의 모든 측면을 솔직히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이를 재조정하는 일”이 포함된다. 21세기 도제의 삶이 예수처럼 빚어지려면 그분께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게 반드시 필요해서”다. 무엇보다 기도와 성경 읽기, 베풂과 섬김, 안식일 준수 등으로 구성된 ‘예수의 핵심 습관 9가지’를 생활 수칙에 넣고 실행할 것을 권한다. “성자는 저절로 되지 않는다”고 믿는 그는 “예수께서 행하신 습관과 리듬, 진리를 중심으로 삶을 정리할 때 우리 삶은 변화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혹 ‘훈련이란 행위로 은혜를 얻으려 한다’는 지적이 나올 걸 대비해 저자는 “은혜는 노력에 반(反)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는 것’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매사에 바쁘고 교회도 떠나서 그분의 도제 자격이 없다’는 이들에겐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등장인물인 파리아 신부의 말을 인용해 답한다. “그건 중요하지 않네. 하나님이 자네를 믿으시니까.” 미국 아마존 제자도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던 책으로 기독교 복음과 시대별 영성관의 핵심을 간단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문체가 일품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