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0월 13일] 믿으면(2)

입력 2024-10-13 03:01

찬송 :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545장(통344)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1장 40절


말씀 :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여서 은혜받는 것이 최종목적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즉,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고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 가운데 이 고백은 많아야 하지만 그 고백 다음에 사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고백이 삶의 현장에서 작동돼야 합니다.

우리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겠다고 믿음을 고백하면서 함께 가자고 하는 사람에게 같이 가주지 않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만 꿈꾸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자라서 결국 죽은 나사로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죽은 나사로가 장사된 곳에 이르렀지만, 이미 장례를 치른 후였기에 무덤은 돌로 막혀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때 마르다가 죽은 지가 나흘이나 지나서 벌써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이 아닌 돌을 옮기는 순종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산을 옮기라고 하지 않으시고 산을 옮길 겨자씨만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역사를 보는 데 있어 장애가 되는 그 돌을 옮기라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가 나오는 입구의 돌을 옮기라는 것입니다. ‘냄새가 난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났다’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진 것 중 하나가 역사는 일어나는 데 돌을 아무도 안 옮긴다는 것입니다. 용서도, 사랑도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옮겨야 하는 돌은 무엇입니까. 가정, 직장, 사업, 학업, 물질입니까.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돌을 옮기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전도도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성령님이 하십니다”라고 고백만 하며 나가서 전도를 못 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신앙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기도 응답이 늦어지십니까. 되는 일이 없나요. 죽은 나사로의 누이들처럼 하나님과 교회를 원망하고 담임목사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응답을 더디 하시고 내 삶에 죽은 나사로처럼 비통함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수많은 무리 가운데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 즉 예수님을 믿게 하도록 때로는 시련도 어려움도 죽음도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돌을 옮겨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믿음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고 돌을 옮길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백종석 서산이룸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