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는 현상유지, 트럼프는 대북 정상외교 재개할 듯

입력 2024-10-10 01:01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8일(현지시간) 뉴욕주 ABC방송 스튜디오에서 토크쇼 ‘더뷰’에 출연해 우피 골드버그(왼쪽 세 번째)를 포함한 진행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초강대국’ 미국의 대선 결과는 한반도 정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재집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대통령 재임 시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나 만나며 관계 개선을 시도했고, 한국과는 방위비와 관세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한·미동맹 중시 기조는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집권하면 계승될 것으로 보이지만 ‘트럼프 2기’가 들어서면 다시 흔들릴 수 있다.

트럼프는 대선 레이스 내내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그의 외교 관점에서 동맹은 안보 공동체라기보다 미국의 힘에 의존해 이익을 챙겨온 ‘초과이익 환수 대상’에 가깝다. 동아시아 전략에서 최전방에 있는 한국도 예외로 두지 않는다.

트럼프는 지난 4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에 관해 “위태로운 곳에 우리 군인 4만명(실제 주한미군은 2만8500명)이 주둔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가 왜 타인을 방어해줘야 하는가. 아주 부유한 나라(한국)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우리를 제대로 대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이 방위비를 더 부담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는 재임 때인 2019년 한국 정부에 기존 액수의 6배 수준인 50억 달러(약 6조7000억원)의 방위비분담금을 요구했다. 당시 백악관 회의에서 “50억 달러로 합의하지 못하면 그곳에서 나오라”고 말할 만큼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후 정권이 바뀐 양국 정부는 2026년부터 5년간 적용되는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지난 4일 타결했다. SMA 적용 첫해인 2026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으로 결정됐는데, 이는 트럼프가 요구했던 금액의 20% 수준이다. 트럼프가 다시 집권한다면 SMA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해리스는 한국을 비롯한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지난 8월 채택한 2024년도 정강에서 “북한의 미사일 능력 증강을 포함한 도발에 맞서 한국의 편에 설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주한미군과 관련해 “트럼프는 철수 계획으로 우리의 소중한 동맹국인 한국을 위협했다”고 비판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 4일 한국과 SMA 합의 후 성명에서 “공동 방위를 강화할 중대한 성과”라며 “1953년 이래 미국과 한국의 동맹은 동북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이를 넘어선 지역의 평화·안보·번영의 핵심 축”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접근법에서도 해리스와 트럼프의 태도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세 차례 만남을 자신의 외교 업적으로 홍보한다. 그는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많은 핵무기를 가진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좋지 않은가. 나는 김정은과 매우 잘 지냈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의 대담에선 “내가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쌓아 (집권 시절) 미국에 북한발 위협이 없었다”고 자평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김정은과의 정상외교 재개를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한국으로 망명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는 지난 8월 BBC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가 북한에는 1000년에 한 번 있을 기회”라며 “김정은은 미국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김정은을 독재자로 규정한다. 그는 8일 CBS ‘더 레이트 쇼’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두고 “독재자이며 살인자로 묘사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트럼프)는 이른바 스트롱맨을 존경하고 그들은 그에게 아첨하거나 호의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는 그들에게 놀아난다”고 비판했다. 해리스는 지난달 트럼프와의 TV토론에서도 “독재자들은 당신의 재집권을 원한다. 아첨과 호의로 당신을 조종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라며 “트럼프가 김정은과 러브레터를 교환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제재 완화 같은 양보를 하기보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과 협력해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 해리스 집권 시 이런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리스와 트럼프 중 누가 집권해도 한반도 비핵화 의제에는 미온적일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2024년도 정강에서 나란히 북핵 관련 문구를 삭제했다.

2020년도 정강에서 민주당은 ‘북한 비핵화라는 장기적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한 지속·협력적인 외교 캠페인’을, 공화당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를 각각 명시했는데 이를 없앤 것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