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싱가포르가 원자재 가격 상승과 팬데믹 등 글로벌 공급망 분절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바이오·첨단제조 등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급망 파트너십 약정(SCPA)’을 8일 체결했다. 통상의 양해각서(MOU)보다 높은 수준인 SCPA 체결은 한국과 싱가포르 모두 첫 사례다.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로렌스 웡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SCPA 체결을 소개하고 “점증하는 국제 경제의 불안정성에 대응해 전략물자 공급망과 에너지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평시부터 긴급 연락망을 구축해 공급망 교란 위험 징후를 공유하고, 위기를 감지하면 5일 이내에 긴급회의를 열어 대체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은 “양국 간 SCPA를 기초로 바이오·에너지·첨단산업 분야의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공급망 교란에도 함께 대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와의 SCPA는 미·중 무역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적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경제안보’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싱가포르는 세계 600여개 항구를 연결하는 물동량 기준 세계 2위의 항만인 싱가포르항을 보유하고 있다. 석유제품 및 외환 트레이딩 시장에서 중계자 역할을 하는 금융 허브이기도 하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이번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액화천연가스(LNG) 수급 협력 MOU’도 체결했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양국은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해 나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내년에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웡 총리는 북한의 불법적 핵무기 개발과 도발을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도 공감했다.
윤 대통령은 오후 싱가포르 주롱 혁신지구에 있는 ‘현대차 글로벌 혁신센터’를 방문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 혁신 제조시설을 둘러봤다. 이 센터는 컨베이어벨트가 없고, 전체 생산 공정의 60%가량을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담당하는 미래형 공장이다. 윤 대통령은 “자동차 산업 역사에서 포드의 컨베이어벨트와 도요타의 적시 생산을 혁신 사례로 말하지만, 이제는 AI와 로봇을 결합한 자율 제조라는 현대차 방식이 새로운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이어 한·싱가포르 비즈니스포럼에서는 “두 나라가 혁신의 파트너이자, 경제안보의 핵심 파트너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