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기류의 습격… 비행기서 뜨아·컵라면이 사라지고 있다

입력 2024-10-09 01:21

해외 출장이 잦은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원모(38)씨는 요즘 유독 출장 전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난 3개월 동안 4번의 출장 중 6번의 심한 난기류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원씨는 “유럽과 미국을 자주 다니는 편인데 최근 들어 난기류가 심해진 걸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가 난기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원씨 사례처럼 난기류는 그저 ‘불안’의 요인에 그치지 않고 있다. 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세계 항공사고 792건 가운데 난기류 사고가 절반 이상(421건·53%)으로 집계됐다.

최근에는 더 나빠졌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발생한 난기류 사고는 111건에 달한다. 이는 전체 사고(180건)의 62% 수준이다.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국적기 난기류 발생 건수는 1만4820건에 달한다. 이는 2019년 상반기 8287건에 비해 78% 증가한 수치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는 ‘기후 위기’가 지목된다. 난기류가 발생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기후 변화가 다각도로 나타나면서 예측이 어려워진 기후 환경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른바 ‘청천난류’가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청천난류는 구름 없는 맑은 날 대류권 상부에서 일어나기 쉬운 난기류를 의미한다. 비행기 레이더로 감지가 안 돼 조종사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발생한 난기류 관련 사고 대부분은 청천난류가 원인이 됐다.

지난 5월 런던발 싱가포르행 싱가포르항공 여객기가 난기류를 만나 비상 착륙하는 과정에 1명이 숨지고 85명이 다쳤다.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였지만, 갑작스러운 난기류가 심장마비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양상이 달라진 난기류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항공업계는 ‘비행 매뉴얼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메리칸항공은 모든 난기류에 대해 안전벨트 표시등을 켜고, 심각도에 따라 승객에게 구체적인 대응법을 지시하도록 한다. 싱가포르항공은 난기류 발생시 기내식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난기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국제협약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선 대한항공이 지난해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와 ‘난기류 인식 플랫폼’ 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세계 21개 항공사가 운항하는 수백만 건의 항공편에서 측정된 난기류 정보를 제공하는 계약이다.

기내식 서비스도 달라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난기류에 따른 화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기내라면이나 뜨거운 커피 또는 차를 서비스하지 않는 추세다. 진에어는 이달부터 전 노선에서 기내라면 서비스를 중단하고 대체 간편식을 도입했다. 저비용항공사(LCC)가 컵라면 유상판매를 중단한 건 진에어가 처음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지난 8월부터 장거리 노선에서 제공하던 일반석 컵라면 제공을 중단하고 샌드위치와 콘독(핫도그) 등 대체 간식을 제공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도 단거리 국제선 일반석 승객에게 뜨거운 커피·차 제공을 중단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