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핵심 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 장려를 위해 도입한 세액공제 혜택을 대기업이 사실상 독식한 것으로 드러났다. 혜택의 4분의 1은 중소·중견기업에 갈 것이란 정부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8일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귀속분 기준 국가전략기술 통합투자세액공제는 19개 법인의 법인세 7432억원에 대해 적용됐다. 그중 99.8%(7416억원)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 8개 대기업 몫이었다. 중견기업(4개)과 중소기업(7개)은 각각 9억원, 7억원을 공제받는 데 그쳤다.
정부는 2021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국가전략기술 통합투자세액공제를 도입했다. 반도체·배터리·백신 등 핵심 산업을 국가전략기술로 분류해 기존 신성장·원천기술을 뛰어넘는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시행 첫해인 2022년 대기업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한 법인세액 공제율은 기존 20~30%에서 30~40%로 10% 포인트 올랐다. 시설투자 비용 공제율도 기존 3%에서 6%로 높아졌다.
정부는 공제 신설로 1조1600억원의 세수가 줄지만 혜택이 중소·중견기업에도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공제액 중 2770억원(23.9%)이 중견·중소기업 몫이 될 것이란 예측이었다. 하지만 시행 첫해부터 공제 혜택 거의 전부가 대기업에 쏠리면서 대기업을 위한 제도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는 관련 분야에 거액을 투자할 만한 곳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밖에 없기 때문이다. 21대 국회 기재위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2~2023년 국가전략기술 및 연구개발투자 신청분의 97.4%(31조5573억원)가 반도체 부문이었다.
‘대기업 일변도’ 세제 혜택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2년간 ‘K-칩스법’을 통해 대기업의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에 적용하는 공제율을 최대 6%에서 15%까지 끌어올렸다. 차 의원은 “조 단위의 감세 혜택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투자와 고용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경제력 집중만 가중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