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익 10조 붕괴 ‘K-쇼크’… 실체 드러난 삼전의 위기

입력 2024-10-09 00:02
연합뉴스

삼성전자의 ‘어닝쇼크’는 반도체 사업에서 여러 악재가 겹친 결과다. 범용 D램 수요 부족과 고대역폭메모리(HBM) 납품 연기, 파운드리 실적 악화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에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은 8일 이례적으로 투자자와 임직원에게 사과 메시지를 발표하며 대대적인 쇄신과 혁신을 약속했다. 올 연말 고강도 인적 쇄신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 부진의 주된 이유는 메모리 시장 양극화에 따른 범용 D램 매출 급감 때문이다.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으로 AI 서버 구축에 필요한 HBM은 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있다. 반면 수요가 부진한 PC·스마트폰 범용 D램은 재고가 쌓이면서 가격이 하락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경기가 이전만큼 회복하지 못하면서 PC와 스마트폰의 재고 소진 속도가 둔화하고 있고, 일부 소비자들이 AI 기반의 고성능 신제품을 기다리는 등 제품 구매가 지연되면서 범용 D램 시장이 위축됐다. 삼성전자의 주력 상품인 범용 D램의 판매량 급감은 실적에 직접 악영향을 끼쳤다. 범용 D램에 대한 수요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업체들의 추격도 따돌리지 못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HBM을 포함한 프리미엄 메모리 시장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HBM은 메모리 시장에서 마진이 큰 분야지만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 납품이 지연되면서 수익을 내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5세대인 HBM3E 8단 제품 양산을 시작했음에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한 성능 검증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업계 최초로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공급했다. 최근에는 12단 제품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SK하이닉스가 예정대로 연내 엔비디아에 공급을 시작한다면 삼성전자는 HBM의 주도권을 영구적으로 SK하이닉스에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파운드리 적자 지속과 재고평가손실 환입 규모도 삼성전자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HBM3E의 경우 예상 대비 주요 고객 사향 사업화가 지연됐고 성과급 등 일회성 비용과 환율 영향 등으로 실적이 하락했다”고 밝혔다.

전 부문장은 실적 발표 이후 회사 안팎으로 불안감이 확산하자 대대적인 혁신을 예고했다. 업계에서는 연말로 예정된 정기인사에서 DS부문 임원진을 대상으로 고강도 인적 쇄신이 예상된다. 아울러 전 부문장이 강조하는 반도체 고유의 치열한 토론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부서 간, 구성원 간 소통을 강화할 수 있는 혁신적인 조직 개편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30년간 유지한 메모리 1위의 위상을 내려놓고 초심자의 위치에서 새롭게 도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