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개입 의혹’ 핵심 인물 명태균씨가 여론조사를 발판 삼아 여권 실세들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하지만 명씨 관련 업체가 수행·의뢰한 조사에선 ‘맞춤형 여론조사’로 의심되는 사례가 여럿 발견됐고, 실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과태료나 경고 처분을 받기도 했다. 가령 자체 보유 데이터베이스에서 표본을 추출하고, 유도성 문항을 배치하거나 특정 연령대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썼다. 또 조사를 이용해 특정 후보를 부각시키려 한 경우도 있었다. 대선을 앞두고 실시한 조사에서도 믿기 어려운 결과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21년 3월 조사에서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21% 포인트 앞섰지만 비슷한 시기 한국갤럽 조사에선 23% 동률이었다.
여론조사의 공정성 시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사업체에 따라, 질문 내용 및 문항 배치에 따라, 가중치 부여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의뢰로 당내 경선 조사를 하던 업체는 “비주류 탈락용 업체”라는 문제제기로 중도에 배제되기도 했다. 휴대전화비 청구 주소를 특정 지역구로 옮겨 전화를 받으라는 ‘동원령’이 의심된 사례도 있었다. 또 여야 후보들이 “전화가 오면 나이를 속이라”는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당원들이 일반 국민 조사에서도 응답하는 이중투표 의혹도 있었다. 현역 의원을 뺀 조사가 횡행해 ‘공천 배제’ 유도용 조사라는 불만도 제기됐다.
이런 사례는 자칫 여론조사가 악용되면 언제든 여론을 왜곡하고 공정성을 해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민심의 바로미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치권이나 선관위, 학계 등이 여론조사의 이런 역기능을 없앨 방안을 심도 깊게 논의해봐야 할 때다. 지금 같은 소극적인 조사 규제와 솜방망이 처벌만으로는 그런 부작용을 막아낼 수 없다. 방안을 서둘러 만들지 않으면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도는 계속 추락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