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은 ‘물의 고장’이다. 영월을 대표하는 두 개의 강이 있다. 하나는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해 정선에서 조양강이 돼 평창을 거쳐 영월의 북동지역을 흐르는 동강이고, 다른 하나는 평창에서 흘러들어오는 평창강과 주천강이 합쳐져 북서지역을 흐르는 서강이다. 두 강은 영월읍에서 만나 남한강 줄기를 이룬다. 이 물길은 수려한 절경을 빚어낸다. 짠한 ‘애사’(哀史)도 품고 있다.
영월은 상고시대 삼한 중 진한 땅이었다. 이어 백제시대 지명은 백월이었다. 이후 고구려가 점령했다. 내생군(奈生郡)이다. 그러나 신라가 차지한 뒤 현(縣)으로 격하된다. 고려 현종 때 지금 이름 영월이 된다.
중요한 교통로였던 한강을 두고 패권다툼이 한창이던 5~6세기 영월은 삼국 간 각축장이었다. 백제와 고구려는 남한강 상류로 북상하는 신라를 막아내야 했고, 신라는 남한강 어귀마다 요새를 구축해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는 한편 북상을 꾀했다. 이때 남한강 주변에는 수많은 산성이 구축된다.
동강과 서강이 만나 몸을 불린 물줄기가 남한강이 돼 두어 번 굽이치며 단양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지점에 닭의 발처럼 생겼다고 하여 이름을 얻은 계족산(해발 890m)이 우뚝하다. 이 산자락에 삼국시대 축조된 정양산성(正陽山城)이 있다. 험준한 산악을 피해 남한강을 타고 침입하는 외적을 쉽게 방어할 수 있는 군사 요충지였다. 산성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강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적 동태를 손바닥처럼 읽을 수 있는 천혜의 요새다. 남한강은 천연의 방어시설인 해자(垓子)나 다름없고 동북쪽은 천연 암벽 위에 성 돌을 올렸다. 북문 밖은 바로 급격한 낭떠러지다.
성벽은 둘레 770m, 높이 8~11m, 폭 4m다. 신라의 고유 방식인 현문(懸門·문턱을 높여 사다리로 출입하는 성문) 터가 3곳 확인됐다. 성벽도 치성(雉城) 혹은 곡성(曲城)을 유지하고 있다.
정양산성은 ‘왕검’이란 사람이 쌓았다고 해 왕검성으로도 불린다. 이에 축조시기가 고구려시대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축성기법이 신라의 대표 성곽인 보은 삼년산성과 비슷하다. 이 산성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자세히 나와 있다.
산성 들머리에서 150m쯤 오르면 정조대왕 태실을 만난다. 태실은 원래 발전소 뒤 야산 철탑 자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1928년) 효율적인 태실 관리보전을 명목으로 전국의 태실을 창경궁으로 모아들였을 때 옮겨간 뒤 영월군이 1997년 이곳에 복원한 것이다.
이곳에서 동강을 따라 올라가면 삼옥리 먹골마을에서 가을철 이색 명소 ‘붉은 메밀꽃밭’을 만난다. 먹골마을 일대 동강 변에 5만2500㎡ 규모로 조성돼 있다. 붉은 메밀꽃의 꽃말은 ‘연인, 사랑의 약속’이다. 붉은 물감을 푼 것처럼 아름답게 물든 꽃밭에서 연인·가족 등 나들이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가을을 만끽한다.
반대편 서강을 거슬러 가면 조선시대 비운의 왕 단종(1441~1457) 유적지 청령포에 닿는다. 단종은 12세 어린 나이에 숙부인 7대 임금 세조에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돼 청령포에 유배됐다. 청령포는 삼면이 서강에 둘러싸여 있어 섬 같은 모습이다. 지금도 배를 이용해야 들어갈 수 있다. 청령포에는 어가 등이,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등이 있다. 단종이 걸터앉아 말벗을 삼았다고 하는 630여 년 수령의 관음송은 천연기념물이다.
바로 옆 청령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6494㎡ 규모로 2021년 개관한 ‘영월관광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제상원 한국관광공사 강원지사장은 “강소형 잠재관광지인 영월관광센터는 단순한 안내소가 아니라 전시·체험·카페 등 온 가족이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청령포에서 차로 5분 거리의 장릉은 16세에 살해된 단종의 무덤이다. 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영월의 호장 엄흥도가 몰래 수습해 암장했다.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 정비하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상류로 더 올라가면 주천면에 미술관과 박물관, 공방이 합쳐진 복합예술공간 ‘젊은달 와이파크’가 있다. 입구부터 빨간 강철의 대숲이 강렬하다. 이어 땅에서 솟아난 알 같은 목성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강원도에서 자란 소나무 장작을 엮어 만든 높이 15m, 지름 12m의 대형 돔이다.
여행메모
30일까지 ‘영월가는달’ 인증 이벤트
젊은달 와이파크 디지털 주민증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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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여행의 중심에 '영월관광센터'가 있다. 영월·태백·정선·삼척 등 폐광 지역 통합관광을 위한 시설로, 옛 탄광길인 '운탄고도'의 시작점이다. 2층 미디어 전시관이 핵심이며, '영히어로 스포츠 체험관' 등도 갖췄다. 10월에는 화~목요일과 일요일 오후 8시, 금·토요일 오후 9시까지 야간 운영한다. 옥상정원에서 청령포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고, 아트라운지 소극장에서는 매주 토요일 창작 공연이 펼쳐진다.
오는 30일까지 '영월가는달' 방문객 인증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영월관광센터 방문 QR인증 후 개인 인스타그램에 후기를 올리면 추첨을 통해 영월 로컬상품을 경품으로 발송해 준다.
영월화력발전소 담장이 끝나는 곳에 계족산 산행 안내도가 있고 무료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정양산성까지 30분쯤 소요된다.
붉은 메밀꽃 축제는 오는 13일까지 진행 중이다. 무료 입장이며, 승용차 330대를 수용할 수 있는 무료주차장도 조성돼 있다.
젊은달 와이파크 입장료는 어른과 청소년 1만5000원, 어린이 1만원이지만 '디지털 주민증'으로 3000원 할인받을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영월=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