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난감… 안 쓰는 물건, 부담없이 기부하세요

입력 2024-10-12 03:01
게티이미지뱅크

현옥철(64) 목사는 매일 세탁기를 돌린다. 성도들이 기증한 중고 의류를 되팔려면 얼룩이 없어야 하고 냄새가 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세탁소에 맡길 수도 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밤낮없이 직접 옷을 빨아야 한다. 깨끗한 상품으로 거듭난 옷가지가 향하는 곳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매장 ‘하품’이다.

쇼핑몰 가든파이브 지하에 있는 이곳은 지난 4월 22일 문을 열었다. 중고 의류를 포함해 각종 중고 물품을 취급하는 상점으로 현 목사가 전개하는 한센인 사역의 교두보라고 할 수 있다.11일 하품에서 만난 현 목사는 개업 과정을 자세히 들려줬는데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우선 현 목사의 사역 스토리부터 알아야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2011년이다.

의사에서 장사꾼으로… 하품은 어떻게 탄생했나
1일 서울 송파구 ‘하품’ 매장에서 만난 현옥철 목사는 “한국교회의 많은 성도가 지지하고 기도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은 현 목사가 한센인 사역에 뛰어든 해다. 그는 이때부터 국제의료봉사회를 이끌며 지구촌 한센인들을 섬겼다. 한센인이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환자들의 상처를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주고 붕대로 감싸줬다. 현 목사와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 가운데 일부만 일단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왜 한센인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됐나.

“한센병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띠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감각 신경을 잃는다. 손발이 제구실할 수 없게 됐는데도 통각이 없으니 환자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모습은 영적으로 둔감해진 현대인이 자신의 죄를 느끼지 못하고 끝없이 타락하는 행태를 떠올리게 해준다. 한센병에서 ‘신학적 메타포’를 느낄 수 있는 셈이다. 한센인 사역은 시대를 깨울 수 있는 사역이다.”

-한센인 사역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정말 많은 환자를 만났다. 그들을 씻겨주고 치료해주고 안아주면서 그들의 삶이 바뀌는 걸 봤다. 이런 경험을 통해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다.”

-왜 가게를 열게 됐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국교회의 선교 활동이 위축됐다. 헌금도 줄었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사역을 그만둘 순 없지 않나. 필요한 재정을 어떻게 충당할까 고민하다가 굿윌스토어나 아름다운가게처럼 중고 물품으로 나눔의 뜻을 실천하는 매장을 떠올리게 됐다. 후원금을 내는 일은 성도들에게도 부담이다. 하지만 안 쓰는 물건을 기부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현 목사는 오랫동안 통증의학 전문가이자 중의사로 활동하면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다니던 병원을 때려치웠다. 병원 탓에 사역을 위해 마음껏 출장도 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퇴직은 ‘풀타임 사역’이라는 오랜 꿈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병원을 그만둔 뒤엔 세계 곳곳을 누볐다. 올해만 해도 인도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사역을 전개했다.

이날 둘러본 가게엔 ‘이웃을 살리는 기부와 소비’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매대에는 온갖 물건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 신발 모자 그릇 목걸이 넥타이 그림…. 처음 가게를 열 때만 하더라도 반대하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휘황찬란한 쇼핑몰에서 누군가 쓰던 물건을 파는 일은 승산 없는 장사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현 목사의 생각은 달랐다. 많은 크리스천이 동참해줄 거라고 믿었다.

실제로 가게는 개업 6개월 만에 자리를 잡았다. 월 매출은 500만원 수준이다. 현 목사는 하품의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하나씩 들려줬다. “전국 곳곳에 하품 매장을 운영하고 싶다” “중고 물품을 쌓아놓을 창고가 있었으면 좋겠다” “해외에도 매장을 만들어 한센인들이 자립하는 근거지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이미 한국교회 많은 성도가 현 목사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한국기독교한센인선교회(회장 이광섭 목사)는 현 목사의 사역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지난 7월 1t 트럭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하품이라는 가게명은 ‘하나님의 품’의 줄임말이다. 이 같은 상호(商號)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하품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되고 주일에는 문을 닫는다. 현 목사는 “하품이 중고 물품이 세상으로 다시 나오는 통로가 됐으면 한다. 하나님께 맡긴 가게이니 가게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가난한 지구촌 어린이들에게 중고 장난감을
이주헌(오른쪽 두번째) 목사가 지난달 22일 라오스를 방문해 현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나눠주고 있다. 장난감선교회 제공

중고 물품 기부는 ‘부담 없는 나눔’이라고 할 수 있다. 이웃을 섬기는 일이면서 동시에 지구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환경 보호에 보탬이 되는 중고 물품 기부를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복원하는 일에 얼마쯤 힘을 보탤 수 있다.

이렇듯 특별한 의미를 띠는 중고 물품 기부 사역은 한국교회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그중 이색 사역을 벌이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일명 ‘토이 미션’이라고도 불리는 장난감선교회(대표 이주헌 목사)를 꼽을 수 있다. 장난감선교회의 시작은 2021년이었다. 당시 미얀마에서는 군부 쿠데타로 많은 이가 희생됐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아이가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이주헌(49) 목사는 그해 12월 미얀마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사역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그곳 아이들에게 중고 장난감을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미얀마를 시작으로 ‘장난감 선교’의 규모는 해가 갈수록 커졌다. 현재는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필리핀에서 각각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과 연합해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날과 성탄절을 앞두고는 장난감은 물론이고 학용품과 각종 스포츠용품, 의류 등을 이들 나라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지난해에 보낸 선물은 1t이 넘고 올해에도 이미 1.5t에 달하는 선물이 동남아 아이들에게 전달됐다. 처음엔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기부가 이어졌지만 현재는 교파를 초월해 한국교회 전체가 힘을 보태고 있다.

물론 장난감선교회에 답지한 장난감을 전부 해외로 보내는 것은 아니다.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친다. 지저분하거나 총이나 칼처럼 아이들 정서에 좋지 않은 물건은 제외한다.

선별된 장난감을 포장해 선교지로 보내면 아이들은 1~3개월 뒤 선물을 받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목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프리카나 남미 같은 곳에서도 장난감을 보내 달라는 요청이 있지만 배송비 탓에 어려움이 있다”며 “물류 회사와 협력해 이들 지역에도 선물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지난달 22일 라오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산타클로스처럼 장난감 선물을 잔뜩 들고 나타난 이 목사 덕분에 아이들의 눈빛은 별빛처럼 반짝였다고 한다. 어쩌면 장난감선교회 덕분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1호’가 생긴 아이도 많았을 것이다. 이 목사는 “장난감을 받는 아이들이 터뜨리던 환한 웃음, 그 미소가 내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다”고 했다.

이 목사가 장난감선교회를 이끌면서 항상 염두에 두는 말씀은 마태복음 10장 42절이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는 장난감선교회를 향한 한국교회 성도들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녀들이 사용하지 않는 중고 장난감이 먼 나라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장난감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보내주세요. 그 사랑이 이 세상에 선한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글·사진=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