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신탁이 내린 밤
검붉게 비추던 달빛
고향을 떠나야 하는 심장은
봉숭아꽃보다 더 붉게 물들고
데라의 깨진 우상을 밟고 길을 나설 때
코끝에 닿던 사막의 뜨거운 바람
왜 시대의 용사 니므롯을 부르지 않고
나를 부르셨는가
니므롯이 쌓은 지구라트 앞에
나의 제단은 얼마나 초라한가
가나안으로 가는 길
사막 위로 푸른 은하수가 흐르고
은빛 모래들이 날리는 밤
이삭 대신 나의 심장을 칼로 도려내어
불의 번제를 드리리
모리아에서 다른 이의 돌이 아닌
나의 눈물과 피, 심장으로
당신의 제단을 쌓으리.
시인(새에덴교회)
아브라함은 기독교는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도 존경받는, 이른바 ‘믿음의 조상’이다. 창세기에서 비교적 많은 분량의 기술과 감동적인 신앙의 모본(模本)을 보이는 그는 무엇보다 ‘순종의 사람’이다. 그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이 ‘보여줄’ 불확정적인 미래의 땅으로 가라는 말씀에 순종하며(창 12:1), 하나님의 시험에 따라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드리려 한다.(창 22:2) 시인은 그 마음의 근저에 ‘당신이 저를 부르시는 감격에 흘린 눈물’이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온 생애를 일관했기에 자신의 심장을 번제로 드리더라도 ‘당신의 제단’을 쌓아가겠다고 다짐한다는 것이 시인의 관점이다. 그 믿음의 진실성 치열성 지속성이 부동(不動)의 모범이기에 그렇다.
- 해설 : 김종회 교수(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
*데라는 아브라함의 아버지로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우상을 만들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니므롯은 창세기 10장 8절에 근거한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 각지에서 발견되는 피라미드 모양의 네모반듯한 탑이다. 고대 근동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으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