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의 무기, 여론조사… ‘맞춤형 마사지’로 영향력 키워

입력 2024-10-08 00:04 수정 2024-10-08 00:04

‘공천개입 의혹’ 한복판에 선 명태균씨가 지역 정치권에서 명성을 쌓은 발판이자 무기 중 하나는 여론조사였다. 정치권은 불법·합법 경계를 넘나드는 ‘맞춤형’ 여론조사를 매개로 정계 진출을 꾀하는 인사들과 관계를 맺었고, 이를 통해 인맥을 다시 확장하는 방식을 써온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7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미래한국연구소 등 명씨 관련 업체가 의뢰·수행했던 여론조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자체 보유한 데이터베이스(DB)에서 표본을 추출하고 유도성 문항을 배치하는 한편 특정 집단의 응답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첫 조사 결과를 선점해 여론 흐름을 주도하는 ‘퍼스트 펭귄’ 전략과 결합하며 영향력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다.

명씨 업체가 수행한 2016년 1월 제20대 총선 경남 진주 지역 출마 예상자 지지도 조사에서 이런 방식이 드러난다. 이 조사는 후보들로부터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고, 업체는 심의 끝에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당시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설문 문항에 현역 의원을 첫 번째 순서로 고정 배치한 점, 30대 응답에 기준을 초과한 가중치를 부여한 점 등을 이유로 객관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명씨는 대선 직전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공표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했을 때도 연령별 투표율 가중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씨는 자체 보유한 유무선 전화번호 등 DB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여심위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미래한국연구소가 2019~2022년 직접 실시한 선거 여론조사 24건 중 7건이 위반조치(고발 4건·과태료 1건·경고 2건)를 받았는데, 7건 모두 자체 DB를 사용하는 등 ‘표본 대표성 미확보’가 문제가 됐다.


설문 문항 배치를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설계하는 등 유도성 질문으로 ‘맞춤형 결과’를 얻었다는 의혹도 있다. 미래한국연구소 의뢰로 PNR이 실시한 2020년 2월 21대 총선 경남 창원진해 여론조사가 대표적이다.

해당 조사 설문지에선 김영선 전 한나라당 대표(미래통합당 후보)와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민주당 후보)의 양자 가상대결을 먼저 묻고, 이어지는 질문에서 미래통합당 경선 후보 3인·4인·8인 가상대결을 차례로 묻는다. 이런 질문 순서는 응답자들에게 김 전 대표가 미래통합당의 유력 후보처럼 인식되게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여론조사업체 대표는 “선거 여론조사에선 당내 경선처럼 모집단이 정해져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자체 DB를 쓸 수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어떤 질문을 먼저 배치하느냐가 응답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선관위 등과 긴밀히 협의한다”며 “양자 가상대결을 먼저 묻는 건 각인효과 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미래한국연구소 측 의뢰를 받은 PNR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조작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