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해외 생산거점을 찾아 기회 선점을 강조했다. 전자 업계의 미래 핵심 시장으로 꼽히는 전장 사업에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점유율 확대를 주문한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를 빼면 삼성그룹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이 부족하다는 산업계의 부정적 인식을 깨기 위한 이 회장의 현장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7일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6일 필리핀 칼람바에 있는 삼성전기 생산법인을 방문했다. 이 회장은 주요 경영진과 미래 사업 전략을 논의하고 삼성전기의 MLCC 사업 현황을 점검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인공지능(AI), 로봇,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른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회장은 2020년과 2022년에도 부산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전장용 MLCC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적극 대응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최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올리버 집세 BMW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글로벌 완성차 경영자들과 만나는 등 전장 사업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MLCC는 전자 회로에 전류가 일정하게 흐르도록 조절하고, 부품 간 전자파 간섭을 막는 핵심 부품이다.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반도체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댐’ 역할을 한다. 특히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에 탑재되는 전장용 MLCC는 차세대 먹거리로 불린다. 전장용 MLCC는 일반 정보기술(IT) 기기에 들어가는 MLCC보다 제품 수명이나 기술 안전성 측면에서 더 높은 품질이 요구된다. 고온·고압 환경에서도 성능이 유지돼야 하며 IT 기기용 MLCC보다 5~10배가량 값이 비싸다. 탑재되는 양도 많다. 스마트폰에 IT 기기용 MLCC가 1000개 정도 들어가는 데 비해 전기차에는 전장용 MLCC가 작게는 3000개, 많게는 2만개가 탑재된다. 업계는 MLCC 시장이 지난해 4조원에서 2028년 9조5000억원으로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전기는 올해 글로벌 전장용 MLCC 시장 ‘톱3’ 진입을 노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기의 전장용 MLCC 시장 점유율은 2022년 4%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3위권인 13%까지 확대됐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기의 MLCC 점유율 확대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AI 분야 등 차세대 산업에서 삼성이 기술 우위를 확보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