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콘도그(미국식 핫도그) 어때?” “전 채식주의자잖아요.” “그러면 칠면조?” “칠면조도 고기예요.” “미네소타에선 (고기가) 아니지. 칠면조는 특별해.”
팀 월즈(60) 미국 미네소타 주지사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통령 후보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뒤 소셜미디어를 달군 건 그의 ‘아재개그’ 영상이었다(참고로 미네소타는 칠면조 수도로 불리는 최대 생산지다). 백미는 ‘또 시작이다’쯤으로 번역될 20대 딸의 어이없는 미소. 아마도 처음이 아니었을 부녀의 ‘티키타카’에는 유독 2030 여성이 반응했다. 한 여성은 월즈에게서 “트럼프와 폭스뉴스에 빼앗긴 아버지, 보수적이지만 교양 있고 합리적인” 미국 아버지 모습을, 다른 이는 “다른 의견을 대하는” 여유와 “쿨한 척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쿨한” 어른의 태도를 봤다.
이례적인 열광은 월즈가 가장 미국적인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이해된다. 중서부 소도시에서 24년간 주방위군과 교사, 풋볼 코치로 일하다가 뒤늦게 정치에 뛰어든 월즈는 주의원으로 일할 때만 해도 민주당 내 우파로 분류됐다. 자칭 사냥꾼인 그는 민주당원들에게는 영원한 빌런인 전미총기협회(NRA) 열혈 회원이었고, 총기규제에도 반대했다. 총기사고 유족을 만난 뒤 달라졌다. 이후에는 주지사의 힘으로 강력한 총기규제와 무료급식 같은 진보 정책을 밀어붙였다. 지금은 민주당 내 왼쪽 그룹으로 분류된다. 그에게 진보는 목적지라기보다 해법. 월즈에게 ‘어쩌다 좌파’라는 냉소적 꼬리표가 따라붙는 이유다.
그의 정치 궤적은 꾸준히 왼쪽으로 움직였지만 문화적으로 월즈는 순도 100% 백인 남성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외양부터 그렇다. 중서부 노동자 교복인 체크 플란넬셔츠에 야구 모자를 즐겨 쓰고, 미군 시계라는 별명을 가진 해밀턴 시계를 찬다. 취미는 차고에서 1979년식 오프로드 차량을 닦고 조이는 일과 꿩 사냥하기. 코미디언들이 놀려대듯 초콜릿칩 쿠키를 바구니째 먹고, 조리법 대회에 나가 1등을 할 만큼 칠면조 요리에 진심이다.
월즈는 미국의 정체성 정치가 정한 구획을 헝클고 뒤섞는 효과를 냈다. 이를테면 민주당 지지자는 ‘고양이를 안고 다니고’ ‘비건푸드에 목매는’ 젊은 백인 여성이란 식의 편견, “아이 없는 캣 레이디”라는 J D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 말에 담긴 조롱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이질적 존재감으로 진보정치 내부의 반성도 촉구한다. 베이비부머 백인 남성의 칠면조와 밀레니얼의 채식. 양자가 서로에 품은 혐오는 정당한가.
월즈 부녀 영상은 온라인 속 증오에 속지 말라고 말한다. 인종과 젠더, 계층과 취향의 차이는 현실에 존재한다. 하지만 공존하기 위해 마법이 필요한 건 아니다. 월즈 부녀가 보여준 다정함과 유머면 된다. 월즈 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음식을 먹든 빌어먹을 당신 일이나 신경쓰라’. 청년들은 이런 중서부 대디의 지혜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지난 1일(현지시간) 열린 밴스와 월즈 부통령 후보 토론회는 밴스의 판정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련되고 능란했던 변호사 출신 밴스에 비해 월즈가 초짜처럼 불안해보인 건 맞지만 부통령 토론회가 승패를 바꿀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누가 된들 그들이 국정 변수가 될 리도 없다. 존재감 희미한 자리지만 두 명의 부통령 후보가 대선 레이스에 던지는 질문만큼은 묵직하다. 미국인들은 월즈와 밴스의 삶에 미국의 현재를 투영해보고 묻게 될 거다. 누구의 얼굴에 그들이 꿈꾸는 공동체의 미래가 담겨 있을까.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해낼 것인가만큼이나 의미 있는 질문인 듯하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