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가 되기 위한 시험을 치르고 15년 가까이 합당한 직책을 받지 못한 세월이 야속하진 않았을까. 대한성공회 성직 고시 첫 번째 여성 응시자이자 두 번째 은퇴 여성 사제인 유명희(65) 사제를 만나기 전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최근 중구 정동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만난 그는 예상과 달리 “긴 시간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져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 사제가 되기까지
유 사제는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중학생 시절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끼면서 교회에 나갔다. 자신을 전도한 그 죽마고우는 그의 사제 서품과 은퇴식에 모두 참석했다. 고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했지만 4년 차 즈음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성직을 결심하게 됐다.
그는 “교회 성탄절이나 행사에서 봉사하면서 기쁨을 느꼈던 것이 떠올랐다”며 “교회에서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은 평생 해도 기쁠 것 같다는 마음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일 하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을 실현하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1989년 부제성직고시를 치렀지만 14년이 지난 2003년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유 사제는 “성직 고시 위원들이 서류 심사 과정에서 여성이 시험에 응시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시험을 보게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도 토론했다고 하더라”면서 “응시 자격은 주어졌지만 ‘판정 보류’로 결론이 났다”고 했다. 통상 성직 고시를 치르고 부제(부목사)가 된 뒤 1~2년이 지나면 사제가 된다. 그러나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긴 시간 동안 전도사로 사역했다. 1991년 강원도 태백교회를 시작으로 대전 충주 등 교회 3곳에서 5년간 시무했고 이후 태백의 기독교 생활공동체인 예수원에서 6년가량을 보냈다.
여성 사제가 기억하는 장면 3가지
유 사제에게 1983년 신학대에 입학부터 올해 2월 중순 은퇴까지 지난 41년간 가장 기억나는 순간을 꼽아달라고 했다. 모두 여성이기에 경험했던 일이었다. 첫 장면은 신학교 졸업 후 들어가는 사목신학연구원(현 신대원) 개강 첫날이다. 그는 “주교 추천서도 없고 등록금도 내지 않았기에 ‘내가 입학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으며 교문을 지나 강의실 앞에 섰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고민하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 23명의 남자 성직 후보생 사이에서 맨 앞자리에 앉았던 그때를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라고 회고했다.
두 번째는 신학교 졸업 무렵 전도부인 할머니와 만남이다. 평신도로 평생을 헌신하며 한국교회 초기 부흥을 이끌었지만 교회 지원이 끊기면서 더는 사역을 할 수 없게 된 이였다. 유 사제는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드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며 그때 품은 다짐은 그에게 여성 성직자로서 어려움에 부딪힐 때 견뎌내는 힘이 되기도 했다.
마지막은 전도사로 한 시골교회에 부임한 첫날이다. 그는 오랫동안 목회자가 없던 교회에 자원했다. 유 사제는 “남자가 아닌 여자가 와서 모두가 당황했지만 ‘미혼이면 식사, 기혼이면 생활비가 걱정’이라던 성도님들이 미혼인 데다 여자가 왔다는 말에 마음을 놓았다고 하는데 여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해 다소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국내외 보수 교단에서는 아직 여성 목회자 안수를 허락하지 않는다. 안수가 가능한 교단이라고 한들 여성 목사의 비율은 현저히 낮다. 유 사제는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함께 협력해 갈 때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있다”며 “여성 안수 등 여성에 대한 결정을 논할 땐 여성을 제외하지 말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선배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유 사제는 현재 태백에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와 간호사와 함께 우울증과 조현병, 알코올중독자 등을 위해 일한다. 큰 감정 동요가 없던 유 사제는 인터뷰를 마치고 사담을 나누며 잠시 눈물을 보였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여성 사제가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한 후배의 응원 문자를 읽으면서였다. ‘선배가 걸어오신 길이 세상의 빛을 비춰주길 항상 기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예전보다 기회나 여건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이나 직업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기울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자신이 좋아하고 의미가 있는 일을 찾아 끝까지 달려가시길 바란다”고 했다. 거창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 완주도 의미 있다는 따뜻한 응원처럼 들렸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