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신종 플루도 조류에서 돼지로, 다시 사람으로 넘어오면서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초래했다. 최근 철새를 통해 확산하는 조류 인플루엔자(독감)가 야생 조류와 가금류를 넘어 포유류와 사람에게서의 감염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잦아지고 있어 걱정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최근 글로벌 백신 기업이 주최한 기자 간담회에서 조류 인플루엔자의 잠재적 위험성과 새로운 팬데믹 가능성에 우려를 표명했다. 올 초 국제 학술지(Human vaccines & Immunotherapeutic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H7N9 조류 인플루엔자의 인체 감염 및 사망 사례는 각각 1568건과 61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H5N1(902건, 466명), H9N2(125건, 2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학계에서는 특히 고병원성인 H5N1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H5N1은 A형 인플루엔자의 변이종으로 지금까지 300종 이상의 조류와 소 돼지 고양이 등 40종 넘는 포유류를 감염시켰다. 올해 4월부터 지금까지 감염된 소와 가금류를 통해 사람에 전파된 사례가 미국에서만 14건 보고됐다. 국내에서도 최근 오리농장 등에서 H5N1 확진 사례가 잇따르자, 질병관리청이 인플루엔자 대유행 대비 계획 마련에 나선 상태다.
이 교수는 “아직 사람 간 전파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포유류 숙주를 거치며 사람에서 사람으로 확산 가능한 형태로 바이러스가 유전적 변이를 거듭한다면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팬데믹을 유발할 수 있다. 미국에선 이를 대비해 긴장을 바짝 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신속한 백신 개발과 생산, 접종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9년 신종 플루 대유행 때 세계적 기업들의 면역증강제 함유 백신이 사용됐다”며 “당시 젊은 층이 맞았던 백신은 항원량을 4분의 1 정도로 줄인 것으로, 이는 면역증강제를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이어 “현재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백신은 유정란과 세포 배양 백신으로 면역증강제 기술이 없어서 이를 확보한 글로벌 기업과 협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신속한 개발이 가능한 백신 플랫폼인 mRNA 백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도 절실하다. 아울러 향후 모든 변이에 대항 가능한 ‘범용 백신’ 기술 개발 및 생산 체계의 구축, 충분한 물량 비축 등 사전 준비가 따라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