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공개된 尹·韓 만찬 사진
두 사람 악수 장면 쏙 빼놓은 채
'갈등' 암시하는 컷만 언론 제공
대통령실, 與의 위기 홍보한 셈
대통령·여당 지지율 최저 수준
내부 갈등 길어지면 회복 불능
공동운명체임을 잊지 말아야
尹·韓 직접 소통해 돌파구 찾길
두 사람 악수 장면 쏙 빼놓은 채
'갈등' 암시하는 컷만 언론 제공
대통령실, 與의 위기 홍보한 셈
대통령·여당 지지율 최저 수준
내부 갈등 길어지면 회복 불능
공동운명체임을 잊지 말아야
尹·韓 직접 소통해 돌파구 찾길
대선후보 TV토론의 효시는 1960년 미국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의 대결이다. 43살의 젊은 케네디는 짙은 정장, 스타일리시한 헤어스타일, 태닝한 얼굴로 TV토론에 자신만만하게 나선 반면 닉슨은 회색 양복에 특색 없는 음성과 창백한 얼굴로 일관했다. 이후 선거 판도는 뒤집혔다. 케네디는 백악관에 입성한 뒤에도 사진을 적극 활용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뛰어노는 어린 두 자녀를 박수치며 지켜보던 사진이 대표적이다.
대중적 인기가 없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 사흘 뒤 뉴욕 세계무역센터 붕괴 현장에서 ‘확성기 연설’을 했다. 이 사진은 그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남았고, 미 언론들은 부시의 연설이 “상처입은 나라가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평가했다.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시트콤으로 인기를 얻은 코미디언 출신이지만, 현재 세계는 그를 ‘전시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국방색 셔츠를 입는 그의 이미지는 군과의 결속, 국민과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한다.
이미지는 메시지와 감성을 전달하는 강력한 정치적 도구다. 그 주체가 지도자일수록 이미지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그만큼 정치에서 이미지는 중요하다. 언어를 사용하는 직접 소통과 달리 비언어적 소통은 몸짓과 음성으로 대표된다. 대표적인 게 바로 이미지다. 이미지는 대상을 명확하게 만들고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해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조지아주 구치소에서 찍었던, 카메라를 노려보는 머그샷은 지지자들을 더욱 결집시켰다. 그가 7월 펜실베이니아 유세 중 총격에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쥔 채 “싸우자”고 외친 사진은 지지자들에게 강력한 권력 의지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 대통령 참모들도 이런 방식을 활용했다. 오히려 역효과만 거뒀던 예도 있다. 대표적인 게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서울대병원 방문에서 빚어졌던 ‘살려야 한다’는 문구 논란이다. 2020년 문재인 대통령의 경기도 화성 LH 임대주택 방문 연출 구설도 비슷한 사례다.
지난달 24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지도부와의 만찬 회동을 촬영한 사진은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의 현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날 대통령실은 취재·사진기자 풀(POOL) 취재를 허용하지 않고 만찬 뒤 전속사진사 촬영 사진 4장을 공개했다. 2장은 단체사진, 2장은 윤 대통령이 무언가를 설명하면 참석자들이 경청하는 듯한 사진이다. 대통령실은 당초 7장을 공개했다가 3장을 회수했다. 회수된 사진 중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악수하는 ‘투샷’도 있었다. 대통령실이 지난달 119특수구조단 등을 방문한 김건희 여사 사진을 공개한 건 18장이었다.
김 여사 논란과 의·정 갈등 해법 등 현안을 놓고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친윤계와 친한계가 갈등을 빚는 상황은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만찬에서 공개된 사진은 두 사람의 관계가 이제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란 심증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한 대표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참모들이 이런 상황을 필요 이상으로 불거지게 만든 건 더 큰 문제다. 오히려 위기를 홍보한 셈이 됐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올해 초부터 김 여사의 사과 문제를 놓고 충돌했고, 채 상병 특검법 제3자 추천,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등 주요 현안마다 갈등을 이어 왔다.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이 지난해 야권 성향 유튜브 매체에 “한동훈을 치면 김 여사가 좋아할 것”이라고 하고, 한 대표가 당 차원의 진상조사를 지시해 또다른 갈등으로 번진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야당은 “도중에라도 끌어내리는 것이 민주주의”라며 사실상 탄핵 추진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현재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정부 출범 이후 최저 수준이다. 20%대 국정지지율이 고착화되는 위기 국면인데 여권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과 불협화음만 거듭해 키우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직접 소통해 갈등은 미뤄놓고 국정의 돌파구를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권력 내부 갈등이 깊어지고 길어진다면 회복은 불가능하다. 대통령과 여당은 공동운명체라는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