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술 유출, 지켜보기만 할 건가

입력 2024-10-08 00:33

또 한 번의 기술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전자가 4조원이 넘는 개발비를 투입해 독자 개발한 반도체 핵심 기술이 중국에 넘어간 것이다. 다행히 양산으로 이뤄지기 전 적발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으나, D램 반도체 공정 기술은 정부가 지정해 관리하는 국가핵심기술(NCT)이므로 양산에 성공했다면 파장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기술 유출이 이렇게 쉽게 이뤄지는 이유로는 솜방망이 처벌이 가장 먼저 꼽힌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기술 유출 범죄에 따른 최대 형량은 고작 5년이다. 그마저 대부분 집행유예 혹은 2년 내외의 실형에 그친다. 지난 7월 최대 형량을 9년에서 12년으로 높이는 대법원의 양형 기준 개정이 있었으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이에 대한 방지책으로 처벌 기준을 강화하기 위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심의 중이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기술을 유출한 자에 대한 벌금형 상향조정(산업기술 15억원→30억원, 국가핵심기술 15억→65억원)과 유출·침해 행위 범위 확대를 통한 기술 유출 브로커 처벌의 법적 근거 마련이다.

다만 개정안이 통과돼도 수조원을 투입해 개발한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경우 처벌은 개발비의 1% 이하인 65억원의 벌금형에 불과하다. 기술을 빼돌린 행위로 얻을 수 있는 수백억원 상당의 이익에 비하면 매우 약한 처벌이다. 때문에 산업기술보호법 개정만으로 산업 스파이 행위를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술 유출 피해가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저하까지 야기함을 고려해야 한다. 기술 유출을 시도한 자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간첩 행위를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간첩죄로 처벌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스파이법이나 영국의 국가안보법처럼 해외 주요국은 이미 기술 유출을 간첩죄 수준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형법상 간첩죄(98조 1항)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징역이나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적국은 국제법에 따라 한국과 전쟁 상태에 있는 국가로 정의되므로 현재 대치 상황이 아닌 국내 사정을 고려하면 사문화된 조항이나 다름없다. 외국으로 기술을 유출한 산업 스파이를 간첩죄로 처벌할 법적 조항이 없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간첩죄 대상을 적국으로만 한정한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국회에는 형법상 적국을 ‘외국’으로 고치는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술 유출에 대한 허들을 높일 수 있다.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7년간 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액은 33조원에 이른다. 기술 혁신 수익을 배타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전유성(appropriability) 강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여야가 한마음으로 뭉쳐야 한다.

금연욱 KAIST 기술경영 전문대학원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