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업용 부동산은 장기간 침체 흐름을 쉽게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미국 오피스 공실률은 20.1%에 달한다. 통계가 집계된 이래 최고치다. 공실률과 연체율이 늘며 상업용 부동산 대출 비중이 높은 중소형 은행들도 타격을 입고 있다. 미국의 한 지역 은행 주가는 건전성 우려에 올해 초 이틀새 50%가량 하락할 정도로 위기감이 반영됐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전환점으로 부활을 위한 기지개를 켤 수 있단 기대가 커지고 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컷’(기준금리 0.5% 포인트 인하)에 나서며 고금리 장기화로 얼어붙었던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온기가 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빅컷’ 후 등장한 바닥론
연준은 지난달 18일(이하 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했다. 연준이 금리 인하로 방향을 튼 건 2020년 3월 이후 4년 반 만이다. 이에 따라 금리 상승 이후 연신 하락하던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도 한숨 돌리게 됐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3일 애널리스트들을 인용해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대폭 할인 판매 후 바닥권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지난달 24일 “매수·매도자들은 부동산 시장이 바닥에 이르렀다고 점점 확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2022년 고점 대비 19% 하락했다. 올해 초 뉴욕의 한 사무실 건물은 2018년 매입가보다 67% 낮은 가격에 팔릴 정도였다. 시카고의 한 건물도 올 여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절반 수준에 처분됐다.
하지만 최근 흐름이 달라졌다. 정보제공업체 MSCI는 미국의 1~7월 상업용 부동산 거래액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한 2038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최근 들어 거래량이 꾸준한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데이터 분석회사 그린 스트리트에 따르면 8월 상업용 부동산 가격 지수도 올해 들어 3% 상승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로 향후 통화정책 관련 불확실성이 줄었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올해 말까지 금리를 최소 0.5% 포인트 더 인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금리 재택근무 확산에 수요 ↓
장기간 침체한 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하락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번째는 고금리 장기화가 꼽힌다. 2022년부터 시작된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상업용 부동산을 소유한 기업들이 지출해야 할 금융비용도 급증했다. 2022년 1월까지 0.25%였던 기준금리는 지난해 7월 5.50%(상단 기준)까지 높아졌다.
근무 패턴 변화도 상업용 부동산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주수요자인 빅테크 기업들이 임차 공간을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사무실 부문 공실률은 올 1분기 19.8%까지 상승했다. 금융위기 당시인 13~18%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공실률 증가는 실질임대료까지 하락시켰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해외경제 포커스’에서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사무실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부진을 지속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휘청하며 이들에 대한 대출 비중이 높은 중소형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JP모건 등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0%는 지역은행이나 소형은행에 집중돼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미국 지역은행인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 영향으로 지난해 4분기 대손충당금을 예상보다 10배 이상 설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NYCB 주가는 실적 발표 직후 주가가 전일 대비 37.7% 하락했고, 다음 날도 10%대 하락해 이틀 만에 주가 반토막을 경험했다.
“美 상업용 부동산 매입 기회”
투자자들은 근래 들어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다시 눈길을 주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반등하기 시작하자 부동산 매입을 위한 좋은 기회라고 본 것이다.
부동산 서비스 기업 존스랑라살(JLL)에 따르면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 규모는 1조5000억 달러(약 2800조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차입자가 상환하지 못하는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하면 이를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데이비드 아비람 매버릭 부동산 리얼이스테이트 파트너스 공동 창립자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은) 일부에게는 심각한 불안정을, 다른 이들에게는 상당한 기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금융사인 리걸 앤 제너럴(Legal & General)과 슈로더스(Schroders)는 데이터센터 등을 중심으로 미국의 부동산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글로벌 대체투자 전문운용사인 누빈자산운용은 지난달 2일 국내에서 간담회를 갖고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가격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강조했다. 숀 리스 누빈 리얼이스테이트 미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물류센터, 리테일, 메디컬 오피스의 공실률이 낮았다”며 투자 가치가 높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더라도 매수자와 매도자 양쪽이 합의할 만한 접점 가격을 찾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팬데믹 변화한 근무 환경이 상업용 부동산 가격을 이전처럼 끌어올리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