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구매에 가장 어려운 나라는 어디일까. 자동차업계에서는 대개 이 나라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싱가포르’다. 싱가포르에서는 승용차를 사려면 ‘차량취득권리증(COE)’부터 갖춰야 한다. 1600㏄ 이상의 차량의 경우, 최근 경매를 통해 10만 싱가포르 달러(약 1억1300만원) 안팎으로 낙찰을 받아야 가질 수 있는 권리다.
COE가 없다면 차량 구매 자체가 불가하다. 차종과 무관하게 취득 권리를 가지려면 1억5000만원 이상의 권리금이 필요하다. 차를 살 수 있는 조건 자체가 까다로운 나라인 셈이다. 그런 싱가포르에 현대자동차그룹이 뛰어들었다. 싱가포르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부합하려는 차원에서다. 세계적인 전동화 흐름에 부합하는 조치라는 평가다.
6일 싱가포르 국토교통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현대차·기아의 신차등록대수는 1557대로 지난해 상반기 756대보다 2.1배(106%) 가까이 늘었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333대에서 올해 상반기 941대로 2.8배 이상 증가했다. 증가세만 놓고 보면 압도적인 수치가 확인된다.
무엇보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 설립한 혁신 거점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가 제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판매뿐 아니라 생산까지 더하며 싱가포르 시장에 파고든 게 주효했다.
최근 싱가포르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탑승했던 차가 화제를 모았다. 현대차가 생산하는 전기차 ‘아이오닉5’였다. 아이오닉5는 지난 1월 싱가포르 최대 일간지 ‘스트레이츠 타임즈’로부터 ‘2023 올해의 자동차’로 뽑히기도 했다. 자율주행 ‘레벨4’의 기술을 갖춘 아이오닉5 로보택시도 HMGICS가 양산하는 차종이다.
싱가포르는 왜 신차 구입 비용이 유달리 비쌀까. 싱가포르는 도심 공해와 교통 체증 등의 이유로 차량 구매 권리를 따로 부여하고, 권리금을 높게 책정해 왔다. 등록세, 도로 이용세 등 각종 세금을 내야 차를 살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자동차를 판매하는 환경으로 꼽힌 이유다.
싱가포르는 그래서 자동차 시장에서 유독 매력적인 지역으로 꼽히진 않았다. 수요가 많지 않을뿐더러 구매 조건이 열악하다 보니 핵심 시장에서는 밀려났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은 싱가포르의 시장 가능성을 높게 판단하고 적극 공략 중이다.
무엇보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싱가포르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 때문이다. 2022년 발표한 싱가포르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은 2050년까지 ‘넷제로’(온실가스 배출량 중립)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