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울 형편 안돼 임신중단을 고민중이라면… 위탁제도 알아보자

입력 2024-10-08 03:06
선정규(왼쪽) 성천교회 목사가 지난 2일 서울 성북구 교회에서 가정위탁으로 돌보고 있는 이든이를 안고 있다. 선 목사 오른쪽으로 아내 위윤미 사모와 두 딸 하영·하은씨. 선정규 목사 제공

서울 성북구 성천교회를 담임하는 선정규(58) 목사와 위윤미(53) 사모는 4년 전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 아들 이든(5)이는 함께 다니면 누구나 한 번쯤 시선을 줄 만큼 예쁜 미소의 소유자다. 그런데 행인들이 이든이를 다시 한번 자세히 보게 되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는 흑인 아이기 때문이다. 선 목사 부부는 한국인 엄마와 아프리카계 아빠 사이 태어난 이든이를 가정위탁으로 키우고 있다.

지난 4일 교회에서 만난 부부는 이든이를 만나고 달라진 행복을 설명했다. 선 목사는 “이든이가 집에 오고 나서 웃음과 기쁨이 넘친다”면서 “남남이었던 이든이가 점차 우리 가정을 의지하고 원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행복해진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 행복해하시겠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부부가 이든이를 위탁하게 된 데는 이제 성인이 된 두 딸의 역할이 컸다. 두 딸은 학창시절부터 부부에게 입양을 졸랐다고 한다. 버려지는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부부는 당시에는 여건이 맞지 않아 입양하지 못하다가 2020년 관련 자원봉사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에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었다. 그때 입양 외에도 입양 전에 잠시 아이를 맡거나 위기가정 아동을 돌보는 위탁가정에 대해 알게 됐다.

위 사모는 “위탁은 입양과 달리 주민등록등본에 동거인으로 기록되며 1년씩 계약을 맺는 형태”라며 “아이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돼 일정 부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입양보다 부담은 적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았거나 학대를 받는 경우 등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구원과도 같은 제도”라고 설명했다.

단체로부터 소개받은 이든이는 당시 생후 8개월로 이미 3번째 위탁가정을 거친 아이였다.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이민자로서의 아픔을 알고 있던 부부는 고민 없이 이든이를 집에 데려왔다. 신생아를 키워본 지가 20년이 넘었던 위 사모는 이든이를 잘 키우기 위해 사이버대학 아동학과에 편입해 공부를 시작했다. 누나들도 번갈아 가며 동생을 돌봤다.

가족의 사랑 속에 이든이는 유치원 인기스타가 될 정도로 구김살 없이 자랐다. 선 목사 부부는 이든이에게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가르쳤다.

“이든이가 유치원에서 생일잔치를 하고 와서 나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냐고 묻더라고요. 그건 아니고 친엄마가 따로 있고 세상엔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존재한다고 말해줬죠. 이제 이든이도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고요.”

부부는 이든이와 친엄마를 주기적으로 만나게 하면서 ‘친엄마가 준비되면 이든이를 데려갈 것’이라고도 알렸다. 위탁가정의 본래 목표도 아이를 본래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데 있다. 위 사모는 “이든이가 어려도 속이 깊다”며 “친엄마를 만나고 오면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우리가 서운해할까 봐 티를 안 낸다. 그런데 친엄마 만나기 전날에는 좋아서 잠을 못 잘 정도”라고 전했다.

선 목사 부부는 이든이의 친엄마를 만날 때마다 그가 이든이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 마냥 예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위탁제도가 널리 알려지고 활성화되면 이든이 엄마처럼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 되는 부모가 임신 중단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 목사 부부 주변에도 아내가 둘째를 낳고 사망한 뒤 입대를 해야 하는 남편이 아이 둘을 위탁을 맡겼다가 다시 데려간 일도 있다.

“청소년기에 아이를 갖게 되거나 여러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경우가 부득이하게 생기잖아요. 우리나라 출산율이 낮은 게 걱정이면 이렇게 태어나는 아이라도 지켜야지요. 미혼모(부)가 아이를 낳아도 잘 자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아이를 지우는 비율이 크게 줄어들 겁니다.”

선 목사 부부의 사랑은 이든이에게 그치지 않았다. 올해 초 이든이와 비슷한 외양의 네이슨(11)을 가정에 데려왔다. 네이슨은 태어나자마자 보육원 앞에 버려져 있어 친부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부부가 4~5개월 동안 꾸준히 보육원을 방문해 후원했더니 네이슨이 집에 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해 절차를 거친 후 함께 생활하게 됐다.

네이슨은 이든이와 달리 자아가 이미 형성된 어린이기 때문에 적응 기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다. 보육원에서 자신도 모르게 배워온 나쁜 버릇과 성향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선 목사는 더욱 가정위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최근 영국을 찾았던 선 목사는 조지 뮬러 고아원이 이제는 일반적인 보육시설이 아닌 가정위탁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을 보고 이 같은 생각에 더 확신을 갖게 됐다.

“전문가 말로는 3살까지 부모와 애착 형성이 잘 된다면 평생의 어려움을 겪어나갈 힘이 길러진다고 해요. 입양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면 친부모가 키울 여건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보육원보다 가정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이든이와 네이슨처럼 외모는 다르지만 한국인으로 크고 있는 아이들도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넓은 마음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