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 한동이라도… 두살배기는 온종일 땅을 파헤칩니다

입력 2024-10-07 01:01 수정 2024-10-07 01:01
올여름 한반도는 유례없는 불볕더위에 시달렸다. 단지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 전체가 폭염, 가뭄, 홍수 같은 기후위기를 앓고 있다.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불가항력의 재앙이다. 전 세계적 탄소 감축 노력에도 위기의 강도는 거세지고 있다. 국민일보는 5회에 걸쳐 사진 기획 '뜨거운 지구, 기후위기 현장을 가다'를 보도한다. 북극, 아프리카, 유럽, 호주, 아시아 등 기후위기 현장을 찾아 고통받는 지구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지난달 4일 케냐 북부 로드워 지역 한 연못의 바닥이 갈라져 있다. 케냐 농민들은 가뭄에 강한 작물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만 근본적으로 비가 내리지 않아 이러한 작물조차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상황이다.
삽도 없이 그릇으로 모래를 퍼내는 여인의 앙상한 팔뚝을 본 적 있는가. 흙탕물을 마셔 식중독에 걸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가뭄으로 죽은 가축의 썩은 냄새를 맡아 본 적 있는가.

가뭄이 이어지던 케냐의 메마른 강에 비가 조금 내려 얇고 작은 물줄기가 생겼다. 사진은 지난달 2일 항공 촬영한 모습.

아프리카에서 이러한 풍경은 일상이다. 지난달 2일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서쪽으로 약 700㎞ 떨어진 카쿠마로 향하기 위해 유엔 인도주의항공서비스(UNHAS)의 작은 비행기에 올랐다. 푸른 나무는 점점 사라지고 황톳빛 사막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흙탕물이 된 강줄기 옆으로 난민촌 마을이 보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뜨거운 열기와 건조한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케냐는 최근 몇 년간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카쿠마가 속해 있는 투르카나주가 그 최전선에 서 있다. 카쿠마 난민촌과 칼로베예이 정착촌은 전쟁과 박해로 고향을 떠난 난민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최근 극심한 가뭄과 반복되는 홍수로 새로운 난민들이 유입되고 있다.

케냐 카쿠마 난민촌 주민들이 지난달 7일 땅을 파서 구한 물을 양동이에 싣고 돌아가고 있다.

늘어나는 난민 탓에 이곳도 더는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다. 카쿠마 인근 강이 메말라 땅을 파고 물을 길어 올리는 모습은 일상이 됐다. 남수단 출신의 오크라는 2살 딸과 함께 매일 이곳에서 하루종일 땅을 판다. 하지만 얻는 물은 아주 적다.


비가 오지 않으면 땅을 더 오래, 더 깊이 파야 한다. 그들은 퍼올리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지만 물은 대부분 뿌연 흙탕물이다. 보기에도 사람이 마실 수 없을 정도다. 케냐 보건 당국은 오염된 식수로 주민들의 질병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7일 케냐 카쿠마 난민촌 주민들이 마실 물을 얻기 위해 그릇으로 땅을 파내고 있다.

투르카나주의 로드워 지역은 전통적인 농업과 목축업이 주요 생계수단이다. 하지만 장기간 이어진 가뭄으로 가축들이 먹이와 물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마을 주민 도르가는 “가뭄이 심해지면서 생계수단인 가축이 죽어가고 있다. 마을 주변에 가축 사체를 보는 게 일상이 돼 버렸다”며 “힘겹게 구한 물을 사람과 가축이 나눠 마시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3일 아프리카 케냐 투르카나주의 한 저수지에서 마을 청년이 고인 물을 마시고 있다. 이 지역은 한때 생명과 자연이 어우러진 땅이었지만 이제는 극심한 사막화와 가뭄의 상징이 됐다. 식수를 구하지 못해 탁한 물을 마시는 이 젊은이의 모습은 기후 위기의 가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케냐 날라파투이에 위치한 저수지 역시 올해 비가 내리지 않아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목동들은 남아 있는 물로 언제까지 버틸지 불안해한다. 외곽지역 주민들은 저수지도 없어 가축을 몰고 30년 터전을 떠났다.

아이들이 지난달 2일 메마른 강에서 모래를 퍼내고 있다. 아이 키만큼 파 내려가자 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전 세계 인구의 18%가 거주하는 지역이지만 탄소배출량은 단 4%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는 이들이 더 크게 겪고 있다.

지난달 5일 케냐 투르카나주 로드워 지역 주민들이 뼈만 남은 낙타 사체를 바라고 있다.

올해 들어 케냐의 가뭄 지역은 확산하고 있다. 주로 건조 및 반건조 지역(ASAL)이 그 중심이다. 이 지역은 케냐 국토의 약 80%를 차지하는데, 2022년에서 지난해 사이 가뭄 지역이 35% 증가했다.

케냐 칼로베예이 정착촌 주민들이 지난달 4일 공동 급수대에서 물을 받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정부와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지원이 충분치 않다고 호소한다. 케냐 난민촌에서 만난 리베카는 “기후변화의 주범은 따로 있는데, 계속 이어져 온 삶의 방식이 붕괴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닌 우리에게는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서영희 이병주 김지훈 이한형 최현규 권현구 윤웅 기자


투르카나(케냐)=글·사진 이한형 기자 goodlh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