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우리의 밤, 때로는 낮보다 아름답다

입력 2024-10-04 00:38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밤이 찾아오기에 우리는 어둠 너머 무한한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기쁨으로 가득한 날도, 슬픔에 잠긴 날도 지구가 움직이는 한 반드시 끝난다.”

지역 주민에게 천체 투영기로 밤하늘을 보여주는 행사에서 해설을 맡은 구리타과학의 직원 후지사와(가미시라이시 모네)가 관람객들에게 말한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구리타과학 사장 동생이 별자리에 관한 메모와 함께 카세트테이프에 음성으로 남긴 문장이다.

후지사와는 월경전증후군(PMS) 탓에 한 달에 한 번 주체할 수 없는 우울감에 빠지고, 날카로워진다. 심각한 PMS 때문에 사회생활을 접어야 했던 그는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구리타과학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회사에는 극심한 공황장애로 소통을 단절한 채 살아가는 직원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가 있다. 또다시 찾아온 예민한 시기, 후지사와는 야마조에의 사소한 행동을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린다. 관계가 서먹해진 어느 날 야마조에는 발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고충을 나누고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일본 작가 세코 마이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저마다 인생의 긴 밤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하고 유쾌한 위로를 건넨다. 영화는 각자의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과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별자리를 연관지으며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별들은 어둠 속에서 모두 떨어져 있지만(심지어 실제 거리는 매우 멀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며 길을 안내한다.

꼭 완전한 이해, 완전한 공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적당한 거리에서 존재를 반짝이며 ‘괜찮다’ 신호를 보내주는 누군가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영화는 관계의 틀에 매이지 않는 인간적 연대를 말한다. 로맨스로 결말을 맺는 흔한 공식을 따르지 않은 점은 이런 메시지에 힘을 보탠다.

야마조에가 후지사와에게 건네는 대사는 우리가 어둠의 터널에 들어가기 전까지, 혹은 터널 속에 있을 때조차 서로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하나 분명한 건 우린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겁니다.”

구리타과학엔 후지사와와 야마조에 말고도 최선을 다해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이 있다. 사장은 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우울감과 상실감에 시달린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 아픔을 나누며 일상을 회복하려 노력한다. 어두운 내면의 동료들을 보듬어주는 회사 분위기는 여기서 기인한다.

구리타과학 모습은 판타지에 가깝다. 어딘가 남과 달라 보이는 사람에게 사회는 차갑다. 모두 자장면을 선택할 때 짬뽕을 고르는 이에게, 모두 웃을 때 웃지 못하는 이에게 따가운 시선이 꽂힌다. 최근 한국에 온 미야케 쇼 감독은 “좀 더 좋은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인생의 절반을 일하며 보내는데, 일터의 시간이 행복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마음이 영화에 표현됐다”고 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지나게 되는 어두운 터널이 때로는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메시지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위로가 된다. 영화는 한국이나 일본처럼 동조압력이 강한 사회에서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게 닿을 수 없는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누구에게나 밤이 찾아오고, 또 누구에게나 아침이 온다. 지구가 자전하는 한 모두에게 똑같은 길이의 낮과 밤이 있다. 그러나 밤이 왔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밤이 깊을수록 별이 빛나기도 하니까.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