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동성애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와 관련해 “지금은 먹고 사는 문제들이 충분히 해결되는 게 더 급선무”라며 “사회적 대화나 타협이 충분히 성숙된 다음 논의해도 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수 기독교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차별금지법 입법화를 현재로서는 추진할 뜻이 없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2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장종현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지금은 사실 먹고사는 문제도 심각하고, 저는 정치의 근본이 사람들 먹고사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동성애 합법화 문제와 차별금지법 문제는 사회 갈등의 중요한 축인데, 상당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기독교계가) 우려하는 것도 이해하고, 이것을 추진하는 쪽도 얘기를 하는데 실체와는 상당히 큰 간극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대화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책이란 것은 판단과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서 어느 한쪽은 옳고 다른 쪽은 틀리고 이런 건 아니고,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부연했다.
앞서 장 회장은 이 대표에게 “(지난 7월) 대법원이 동성 부부에 대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했는데, 그 다음엔 동성애 합법화 입법이 진행될 것 같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성애는 기독교를 넘어 우리 전통이나 문화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며 “한교총의 입장을 떠나 민족의 틀을 모두 망가뜨리는 것이니, 이 법안만큼은 막아주셔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대표는 2022년 3월 대선 TV토론회 당시 차별금지법 도입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에 “차별금지법 (얘기는) 수없이 말했는데 반드시 해야 할 과제”라면서도 “논쟁의 여지가 많은 것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그 전해 11월 광주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학생들과의 대화에서는 “동성애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고, 성적 취향으로 차별해선 안 된다”며 “차별금지법은 필요하고, 입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이날 발언은 과거에 비해 조금 더 유보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도 읽힌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무엇보다 민생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것보다는 시급한 민생 현안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이라며 “차별금지법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대표의 오랜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4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2대 국회에서는 장애인과 고용상 연령 차별 금지에 대한 법안만 발의된 상태다.
한편 이 대표는 장 회장에게 “의료대란 위기 해결에 종교계가 적극 나서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