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5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마치 가족의 한 구성원처럼 여기면서 함께 산다는 의미로 ‘반려(伴侶)’ 동물로 부르곤 합니다. 반려의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인데, 일각에서는 이같은 용어가 동물의 지위를 인간과 동등시하는 것 아니냐며 불편해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반려 동물이 아닌 애완동물로 호칭해야 한다는 주장이 교계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애완동물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유아용 유모차보다 애완동물을 태우는 ‘개(犬)모차’가 더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거리엔 애완동물을 위한 호텔, 병원, 카페, 미용숍 등이 즐비합니다. TV나 영화, 광고에선 이목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애완동물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교회 안팎에서도 애완동물을 애지중지해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들이 빚어집니다. 한 목회자는 “교인이 ‘내 딸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깊이 슬픔을 위로해 드렸다”면서 “알고보니 그 딸이 애완견이었다. 스스로 애완견을 딸처럼 여기는 건 이해하지만 제3자에게까지 자식처럼 소개하는 게 맞는지 의아했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자칫 동물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는 건 아닌지 우려도 제기될 정도입니다. 사람보다 애완동물을 지나치게 떠받드는 세태에 경각심을 갖게 만드는 메시지는 성경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이 구절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고, 동물을 포함한 피조물을 다스릴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지나치게 높이는 것은 창조 질서에 어긋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로마서 1장 25절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것이 잘못된 일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동물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이를 지나치게 떠받드는 것은 경배의 대상을 잘못 설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 목회자들도 애완견을 인격화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장례 등) 도를 넘는 허례허식은 삼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애완동물을 지나치게 애호하는 문화는 저출생 시대 속에서 비혼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애정의 대상이 사람보다 동물에게 더 치우친 것 아니냐는 걱정에서 비롯된 마음 같습니다.
최근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고신 총회는 ‘애완동물 장례식’에 대해 “동물에게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이웃을 돌보기보다 동물에 더 집중하는 태도는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우상화”라고 규정했습니다. 애완동물과 ‘선 넘지 않는’ 동행의 지혜가 절실한 때입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