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일 첫 대표회담에서 합의한 ‘민생공통공약 추진 협의체’(민생협의체)가 한 달이 지나도록 닻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민생협의체 출범을 전제로 발족 시기만 조율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김건희 여사·채상병 특검법 재표결, 국정감사 등 험난한 10월 국회 일정으로 정쟁이 심화해 이른 시기 출범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2일 통화에서 “민생협의체 출범과 관련해서는 실무 세팅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출범은 기정사실로 돼 있고, 민주당과 출범 시기를 놓고 협의 중이라는 취지다. 협의체 구성 실무를 맡은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7일 KBS라디오에서 “반드시 출범한다”고 장담했다.
민생협의체 출범 합의는 여야 대표 회담의 사실상 유일한 성과로 꼽힌다. 한 대표는 이를 제안하며 “전쟁 중에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이 대표 설득에 공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도 정쟁과 무관한 민생법안에 대해서는 일종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제도)을 적용하자는 취지에서 출범을 동의했다.
문제는 여야가 처한 정치적 상황이 녹록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4일 본회의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김 여사 특검법과 채상병 특검법 재표결에 나설 방침이다. 이에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건이 올라가면 부결을 당론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강대강’ 대결을 예고했다. 특검법이 모두 부결되면 지금의 극한 대치 상황도 굳어져 여야 관계는 더욱 냉랭해질 공산이 크다.
오는 7일부터 한 달간 시작되는 국정감사 역시 여야 전쟁터로 전락할 우려가 적지 않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김 여사 관련 사안에 대해서만 이미 100명 가까운 증인·참고인을 채택하며 확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야당은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공천 개입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을 겨냥한 집중 공세를 예고한 상황이다. 그러나 김 여사 문제는 국민의힘도 물러서기 어려운 지점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야가 힘겹게 합의한 민생협의체가 좌초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여권 관계자는 “특검법 재표결이 끝나면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싸울 때 싸우더라도 민생에 대해서는 생산적인 논의를 이뤄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