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표류 중인 한국형 차기구축함… 방사청 ‘동시 건조안’은 공수표?

입력 2024-10-03 01:42

2030년까지 해군의 차세대 주력 함정인 미니 이지스함(6000t급) 6척을 발주하는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이 방위사업청의 미온적 태도로 장기 표류 중이다. 당초 방사청은 수사기관의 입찰 비리 의혹 수사 결과를 보고 사업자 선정 방식을 정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수사가 지연되면서 불확실성이 커졌다. 방사청이 궁여지책으로 ‘동시 건조안’을 내놨지만 정작 방산업체 지정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와의 협의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당초 지난 7월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KDDX 비리 의혹이 해소돼야 한다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신경전이 펼쳐지면서 방사청의 판단도 미뤄졌다. 방사청은 경찰이 KDDX 사업 기밀 유출 건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개입했는지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인 터라 사업자 선정 방식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검찰이 최근 KDDX 입찰 비리 의혹을 받는 왕정홍 전 방사청장에 대한 보완수사를 경찰에 요구하면서 경찰 수사 종결 시점은 더 미뤄졌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연내 KDDX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업자 선정 이후에는 실제 건조능력 등 평가를 거쳐 산업부가 방산업체 지정을 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사업자가 방산업체 지정을 신청한 후 6개월 이내에 결론이 난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4~5월 KDDX 방산업체 지정을 신청한 것을 감안하면 지정 절차는 올해 10~11월 중 끝나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통상적인 절차와 별개로 아직 사업자 선정 방식조차 결정되지 않아 방산업체 지정 완료 시기를 못 박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방 전력화 시기가 늦어지는 데 책임론이 커진 방사청은 급기야 ‘공동 개발, 동시 발주, 동시 건조’ 방식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연내 사업 추진을 목표로 한다면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모두 사업자로 우선적으로 선정하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방사청은 방산업체 지정 주체인 산업부와 동시 건조안 관련 논의를 구체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구축함 생산능력에 대한 평가를 두 사업자를 대상으로 해야 할지 하나의 사업자만을 대상으로 할지 논의를 해야 하는데 방사청이 별다른 의견을 주지 않고 있다”면서 “방사청이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해야만 그에 맞춰 방산업체 지정 관련 업무를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사청이 KDDX 사업 지연 책임을 축소하기 위해 공수표를 날렸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공동 건조안의 현실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두 사업자가 협력을 통해 설계를 마무리하고 건조해야 하는데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정보 교환이 원활하게 이뤄질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조 과정에서 사고나 결함이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도 큰 갈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