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란교회(송길원 목사)는 계란 모양의 특이한 교회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의미가 있다. 교회 뜰 안의 수목장 묘지는 이 땅에선 하나님 나라, 죽어선 천국 소망을 갖게 한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양평에 있는 교회를 방문했다. 북한강 변 도로를 따라가다 서종면사무소쯤에서 산 쪽으로 향하다 보면 이정표가 나온다. 거기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산기슭에 청색 계란 모양의 교회가 보인다. 높이는 9.7m. 앞에는 황톳길 미로가 펼쳐져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물으면서 걷던, 실제 중세에 있던 미로를 현대화한 순례길이라고 송길원 목사는 설명했다.
실내는 목재로 만든 19.8㎡(6평) 공간이다. 가운데 법궤를 연상케 하는 오르간이 있고 3개의 창은 얼굴과 팔을 의미한다. 우리를 안아주시는 예수를 형상화했다. 이 공간엔 특별한 지점이 있다. 그곳에 서면 자기 목소리가 달리 들린다. 원초적인 자기 소리, 이것이 자기 영혼을 터치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원형교회
설계는 ‘세계에서 제일 작은 원형교회’라는 랜드마크를 꿈꾸며 미국 파슨스 디자인학교 앤드류 맥네어 교수에게 맡겼다. 뉴욕의 요트 회사에서 12조각으로 제작해 들여와 2012년 조립했다. 처음에는 라틴어로 ‘카펠라 오비’ 계란교회로 불렸고, 바람 때문에 처음 황색이 변색하면서 청동을 입혔다. 이후 청란교회로 불린다.
가정사역 1세대인 송 목사는 사역단체 하이패밀리 대표로 30년 가까이 일했지만 교회 건축 전 당시 삶은 팍팍했다. 그래서 청빙 목회를 할까, 해외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그게 하나님 뜻은 아니었다. 한 권사가 재산을 내놨고 송 목사 동기들은 “이제는 가정사역 방법만 가르치지 말고 직접 목회하면서 가정사역을 펼치라”고 격려했다. 그래서 9만9173.5㎡(3만평) 땅을 마련하고 청란교회와 하이패밀리 센터를 만들었다. 자리 잡은 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어서 센터 내 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교회’로 애칭을 붙였다.
센터에는 특별한 공간이 많다. 첫 번째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이다. 1층에서 문을 열면 나타나는 몽환적 공간인데, 빛을 막고 어둑한 조명과 소리의 울림으로 깊은 공간감을 구현했다. 겨우 한 층 높이인데 느낌은 그 이상이다. 문을 경계로 완전히 다른 공간 속에 들어온 것 같다. 이 계단에서 연주회도 했다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멋지게 울렸을지 상상이 갔다.
계단을 오르면 종교개혁 500주년 예배당이 나온다. 계단에 올라서 잠시 멈췄다가 송 목사의 싸인을 듣고 예배당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단상 뒤편의 대형 커튼이 열리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었을 때 성소 휘장이 찢어진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커튼이 열린 창 너머에 청란교회가 딱 버티고 있다. 계절에 따라 다른 창밖의 풍경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국내 첫 기독교문화체험관 추진
센터는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39.6~49.5㎡(12~15평)의 31실로 이뤄진 3층짜리 기독교문화체험관이다. 핵심은 예술작품과 함께 하는 ‘멍상’, 스마트폰 금지와 함께 기획된 수면 최적화다. 이 사업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사업으로 선정됐고 교계에선 처음 있는 일이라 크게 반기는 상황이다.
여기부턴 죽음의 공간 수목장 이야기다. 수목장 묘역은 청란교회에 가기 전 왼편 기슭에 위치한다. 차로 지나칠 때는 가로로 긴 스틸 벽면만 보였다. 그 벽이 성경의 벽이다. 타블로이드판 크기의 패드 6770장이 벽을 이뤘다. 패드엔 성경 신구약 66권 전체가 훈민정음체로 새겨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 아래 묻어달라는 요청에 따라 안치하면 그게 성서장이다.
성경의 벽은 현대 미술가 전병삼의 작품으로, 빛과 바람에 따라 천 개의 얼굴을 만든다. 패드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위쪽만 걸려있는 구조다. 그래서 바람에 따라 움직이고 빛을 다르게 반사한다. “누구는 갈릴리 호수의 폭풍을 봤다고 하고, 누구는 모세의 떨기나무를 봤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군할 때 만들어진 아지랑이를 봤다고도 합니다. 또 불기둥 구름기둥을 봤다며 감동한 이들도 있습니다.”
송 목사의 사역은 확장 중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곳을 통해 시니어에 대한 눈이 트였다. “노인 천만 시대라고 합니다. 이들을 위해 할 일이 무궁무진합니다. 내 바람은 순교인데, 죽을 때까지 가정 사역만 하다 천국 가면 그것도 순교 아니겠습니까. 그 바람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
양평=글·사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