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노동자여, 생산성 높이려면 일 줄여라

입력 2024-10-04 04:01
일하는 시간만 늘린다고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지속 가능해야 하고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①업무량을 줄인다 ②자연스러운 속도로 일한다 ③퀄리티에 집착한다는 ‘슬로 생산성’의 원칙을 제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일의 성과나 효율을 나타내기 위해 생산성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가장 먼저 쓰인 것은 농업 분야라고 한다. 재배 면적당 생산되는 식량의 양으로 측정하는 비교적 단순한 계산이다. 농부들은 생산성이 높은 수단을 강구했고 영국에서는 노포크식 4년 윤작법(3년 연속 경작 후 1년 휴경하던 기존 농법과 달리 4년 동안 네 가지 작물을 돌려 키우는 농법)을 도입하면서 농업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 공장에서도 농업 분야 생산성 개념을 차용해 시간 당 자동차 생산량 등으로 대체했다. 지식 산업 사회가 되면서 생산성을 측정한다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 됐다. 기껏 나온 생산성을 가늠하는 방법은 ‘눈에 보이는 활동’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유사 생산성’이라고 부른다. 사무실에 앉아 있거나, 이메일 답장과 채팅 메시지가 재깍 도착하면 뭔가 일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바쁘면 바쁠수록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 노동자들은 지쳐갔고 원격근무가 보편화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겪으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저자는 우리를 숨 막히게 해왔던 유사 생산성을 대체할 대안을 고민했다. 찾아낸 것이 ‘슬로 생산성(Slow Productivity)’이다. 책의 원제이기도 하다. 맥도날드가 1986년 이탈리아 로마에 신규매장 개설 계획을 발표하자 반발로 일어난 ‘슬로 푸드’ 운동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슬로 푸드에서 시작된 ‘슬로 정신’은 슬로 시티, 슬로 치료법, 슬로 스쿨링, 슬로 미디어 등으로 퍼져나갔다. 저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검증된 지혜에서 얻은 좀 더 느리고 지속 가능한 방식을 현대인의 바쁜 생활을 대체할 대안으로 제공하는 급진적이지만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말한다.

슬로 생산성은 ①업무량을 줄인다 ②자연스러운 속도로 일한다 ③퀄리티에 집착한다는 세 가지 원칙에 근거해 ‘지속가능하고 유의미한 방식으로 지식 노동 업무를 꾸려나가는 철학’이다. 저자는 “슬로 생산성을 받아들이면 가치 있는 산출물을 생산하는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업무에 짓눌리기보다는 업무가 의미의 원천이 되도록 방향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선 저자는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일들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생긴 여유를 활용해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에 집중한다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공장에서는 노동 시간을 늘리면 생산량이 비례해 늘어나지만 지식 산업에서는 업무량이 늘어나면 산출물의 양과 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우리의 뇌는 서두르지 않을 때 더 잘 돌아간다”면서 “업무량을 줄이면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창의성 측면에서도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큰 프로젝트에서부터 하루 목표량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한하라고 권하면서 매주 특정 요일의 특정 시간에 하는 일을 정하는 ‘오토파일럿 스케줄’도 제안한다. 월요일 오전에 청구서를 보내고, 금요일 점심 식사 직후에 보고서를 검토하는 식이다. 특정 유형의 일을 특정 요일의 특정 시간에 한다면 익숙해져서 그만큼 노력을 최소한으로 줄여 전체적으로는 ‘스트레스가 낮은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인간 고유의 노동 리듬도 되찾아야 한다. 인류 초기 수렵채집 시절에는 고된 사냥을 끝낸 후 오랜 시간 쉬었고, 낚시를 할 때도 입질이 잠잠해지면 실컷 낮잠도 즐겼다.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동이 단조로워지기는 했지만 추수가 끝나면 다시 씨를 뿌릴 때까지 여유를 즐겼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일년 내내 끊임 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하지만 그래도 주 40시간 노동이라는 강제를 통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식 산업 사회의 지식 노동자들은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심지어 휴가 기간에도 시간을 착취당하고 있다. 저자는 “(지식노동자들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28만년간 지배적이었던 노동 리듬에서 완전히 소외된 상태”라면서 “좀 더 자연스럽고 천천히, 리듬을 바꿔가면서 일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진짜 생산성을 발휘하는 기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5년짜리 계획을 세우자, 각각의 프로젝트 일정을 두 배로 늘리자, 하루 일정을 간소화 하자 등의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제시한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원칙 ‘단기적으로 기회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퀄리티에 집착하자’는 다른 두 가지 원칙을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업무량 줄이기와 자연스러운 속도로 일하기는 슬로 생산성을 달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퀄리티에 집착하지 않고 두 원칙을 실행하다면 일은 단순히 ‘다스려야 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부담’으로 여기기 쉽다. 퀄리티에 집착하자는 원칙은 의미 있는 직업 생활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다.

저자는 슬로 생산성의 개념은 “지속 가능해야 하고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슬로 생산성은 매일 반복하는 바쁜 활동에서 한 발짝 물러서자는 탄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속도나 도중에 미칠 듯이 바쁘다는 인상을 준 사람의 수가 아니라 도착지가 어디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세·줄·평 ★ ★ ★ ·우리는 생각보다 쓸 데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경영자들도 읽어야 문화가 바뀔 수 있겠다
·미처 소개하지 못한 실용적 제안들도 풍부하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