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12살 때 위탁가정에 들어가 3년 전 자립한 양희석(26)씨는 2일 “나의 삶은 사회복지사를 만난 후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로부터 꼭 필요했던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상담 과정에서 심리적 안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씨는 “자립준비청년에게 제공되는 지원 정책 하나하나가 실제 자립을 준비하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됐다”며 “자립을 앞두고 어려움을 겪는 많은 보호아동이 위축되지 않고 여러 기관의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면 좋겠다”고 전했다.
2022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보호아동에 대한 보호기간이 종전 만 18세에서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게 됐다. 양씨도 대학에 진학하면서 23세까지 위탁가정에서 지냈다. 이미 성인이 된 뒤지만 일정 시기에 반드시 홀로서야 한다는 사실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일자리와 살 집 마련에 가장 걱정이 컸다. 양씨는 제주에 조부모가 있어 다행히 다른 보호아동들보다 여건이 좋았지만 도움을 받을 처지는 못 됐다. 그때 양씨에게 손을 내민 곳은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였다.
양씨는 주택 소유자의 후원을 받아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저렴하게 원룸을 임대하는 ‘행복하우스’에 입주하는 기회를 얻었다. 양씨는 대학과 가까운 동네에서 월 10만원만 내고 ‘자립’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스스로 공과금을 내고, 음식을 만들어 식사를 해결했다. 장을 보고, 수입과 지출을 계산하면서 하나씩 독립의 기술을 배워갔다. 양씨는 “원룸을 지원받지 못했다면 조부모가 계신 서귀포 남원에서 매일 왕복 5시간을 오가며 학교에 다녀야 했을 것”이라며 “누군가의 도움으로 가장 큰 고민이던 주거 문제를 해결하면서 한결 가볍고 고마운 마음으로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양씨는 가정위탁지원센터와 제주도 아동자립지원전담기관을 통해 자립 시기 필요한 다양한 교육도 제공받았다. 금융교육을 통해 건강하게 지출하고 저금하는 방법을 배웠다. 경제적 독립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보호아동은 보호 종료와 함께 지자체로부터 자립정착금을 지원받게 되는데, 경제 관념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게임이나 유흥에 돈을 모두 써버리거나 보이스피싱, 다단계 피해 등으로 자립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자립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조절했다. 양씨는 자조모임(드림 서포터즈)을 통해 다른 자립준비청년들과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연대감을 쌓았다. 최근에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보호아동의 자립 준비를 지원하는 자립멘토단(바람개비 서포터즈)에서 활동하며 자신이 받은 도움을 되돌려주는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양씨는 현재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제주한라대학교 사회복지과를 졸업한 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로 편입해 학사를 수료한 상태다.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양씨는 “보호아동은 성장 과정에서 가족의 지지와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 심리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면서도 “힘들어만 하기보다 지원 정책들을 활용해 다양한 성장의 기회를 얻으라고 말하고 싶다”며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 역시 여러 복지 혜택을 받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관련 공부를 시작했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주도는 양씨와 같은 자립준비청년의 홀로서기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자립정착금을 종전 500만원에서 지난해 1500만원으로 확대했다. 2023년 정부가 권고한 자립정착금은 1000만원, 제주도는 이보다 많은 15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보호종료아동에게 5년간 매월 지급하는 자립수당도 35만원에서 올해 50만원으로 현실화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의 정서적 지원을 위해 지난해부터 ‘행복한 동행, 멘토-멘티 1대1 결연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고민을 털어놓거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어른’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 결과를 보면, 자립준비청년들은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문화·여가활동 지원’(27%)에 이어 ‘불확실한 미래를 마음 터놓고 의논할 어른 친구’(25.9%)를 두 번째로 꼽았다. 제주도는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회 회원이나 재직 공무원 가운데 희망자를 받아 멘토로 지정했다. 이들은 보호아동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고민 상담 등 정서적 지지와 안정적인 사회 적응을 위한 소비·지출 관리, 여가 활용, 부동산 계약 등 일상의 노하우를 전수하며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현재 멘토 17명과 멘티 14명이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보호종료 후에는 5년간 사후 관리가 이뤄진다. 연 1회 자립수준 평가와 연 4회 전화 등을 통한 모니터링이 진행된다. 문제 발견 시 월 1회 또는 주 1회 상담과 모니터링이 시행된다. 제주지역은 보호종료 후 연락두절 비율이 1%대로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낮다. 친인척뿐 아니라 동창, 동향 간에도 유대가 깊은 지역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자립준비청년의 정서적 지지를 돕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제주에는 5개 아동보호시설에 203명의 아동이 입소해 있다. 매년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오고, 기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한해 30~40명이 ‘보호아동’에서 ‘자립준비청년’으로 홀로서기를 한다. 제주도 관계자는 “보호아동이 존중 속에 자립할 수 있도록 제주도와 지역사회가 든든하고 세심하게 정책을 만들고 시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