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은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국내 실손보험 가입자는 지난해 말 기준 3997만명으로 국민 4명 중 3명 이상이다. 보험금 지급액은 14조803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2000억원 늘었다. 비급여 의료 시장의 팽창과 함께 실손보험의 덩치가 급격히 커졌다. 실손보험이 의료기관과 의료 소비자의 무분별한 과잉진료를 부추긴 부분이 분명 있다. 이로 인해 실손보험 적자가 2조원에 육박한다. 최근 정부가 의료개혁 일환으로 실손보험 개혁에 칼을 빼든 이유다.
실손보험금 지급을 두고 벌어지는 분쟁의 핵심이 바로 과잉진료 여부다. 진료비 청구 자료와 보상 기준 등을 따져 과잉진료가 확실하다면 당연히 보험금 지급을 문제삼는 게 맞는다. 그런데 보험사들이 유독 신의료기술 치료의 보험금 지급에 제동을 거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 우려된다. 정부가 고시한 신의술임에도 무조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측면이 있다. 금융감독원이 올 상반기 접수된 금융 민원 분석 결과 신의술 치료 후 실손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 분쟁 민원이 3490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1.6% 늘었다.
실손보험 분쟁이 잦은 대표적 분야가 전립선비대증 비수술 치료법인 ‘전립선결찰술’로, 2015년 신의술로 인정받았다. 보험사들은 해당 치료법이 국소마취하에 의료용 실로 비대해진 전립선을 양쪽에서 묶는 간단한 시술이어서 입원 치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지급하는 기준 중 하나가 ‘최소 6시간 이상 입원’인데,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9년 신의술로 통과된 유방 양성종양 치료법인 ‘맘모톰 시술’도 비슷한 이유로 논란이 됐지만 2020년 실손보험 지급 대상이 된다는 판결이 났다.
최근엔 무릎 관절염 줄기세포 주사 치료에 실손보험금 지급을 보류·거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7월과 올해 6월 각각 신의술로 인정된 ‘자가 골수 흡인물 관절 내 주사’와 ‘자가 지방 유래 기질혈관분획(SVF) 관절 주사’다. 골수와 지방에는 관절 염증을 가라앉히고 연골을 강하게 만드는 중간엽 줄기세포와 여러 성장 인자가 들어 있어 중기 관절염 치료에 유효성과 안전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골수보다 지방에 중간엽 줄기세포가 훨씬 많아 SVF 주사 치료에 환자들의 관심이 높다.
물론 일부 의료기관이 비급여 의료비를 노리고 과대 홍보하거나 전문성이 부족한 진료과나 병원에서 해당 치료를 시행해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전문 시설과 장비, 인력을 갖춘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신의술 치료까지 무작정 걸고넘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보험사들의 동향에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 역시 보험사들의 신의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재생의학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잉진료를 걸러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신의술 치료에 대한 환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국내 첨단 재생의학을 고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환자의 치료 여부, 수술, 입원 필요성은 보험사가 아닌 의사의 판단에 맡기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정형외과학회 등 전문단체도 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마취통증의학회는 지방 SVF 주사 시술을 위한 수면마취에 ‘최소 6시간 이상 혹은 하루 이상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학적 가이드라인을 최근 제시했다. 실손보험 적용이 맞는다는 얘기다.
질병 치료는 환자의 고통을 헤아리고 일상으로의 빠른 회복에 주안점을 두는 게 목적이다. 신의술도 당연히 상업적, 이해타산적 접근이 아니라 환자 존중을 기본 가치로 두고 환자 입장에서 의료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결정하고 시행할 것을 숙고할 시점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