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67) 자민당 총재가 일본의 제102대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새로 출범한 이시바 내각에는 무파벌 의원들이 전면 배치됐고, 방위상 경험이 있는 안보 전문가들도 중용됐다. 기존 주류 인사들이 내각에서 대거 배제된 것은 향후 갈등 요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시바 총리는 1일 오후 일본 중의원(하원)·참의원(상원) 본회의에서 열린 총리 지명 선거에서 과반 표를 얻어 총리로 선출됐다. 이어 나루히토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새 내각을 발족했다.
이시바 내각은 20명의 각료 중 절반 이상(12명)을 무파벌 인사로 채웠다. 3년 전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출범했을 때 무파벌 인사는 3명에 불과했다. 이번에 처음 입각한 인사도 13명이나 된다. 마이니치신문은 “최대 세력이 된 무파벌은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을 지지한 의원들로 구성된다”며 “기시다 정권에서의 비주류파가 이시바 정권 출범으로 주류파로 전환됐다”고 평가했다.
방위상을 역임한 ‘안보통’인 이시바 총리는 이와야 다케시(67) 외무상과 나카타니 겐(66) 방위상, 하야시 요시마사(63) 관방장관 등 방위상 출신 3명을 내각에 포함시켰다. 이시바의 당내 인맥이 빈약한 만큼 안보 정책을 중심으로 친분을 쌓아온 인사들을 기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이와야 외무상은 2018년 12월 한·일 초계기 문제가 불거졌을 때 방위상을 지냈다. 그는 이듬해 9월 방위상 퇴임 전 “한·일 양국이 외교적으로는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안보에서는 한·일 연대나 한·미·일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관방장관과 후생노동상 등을 지낸 가토 가쓰노부(68)는 재무상에 임명됐다. 여성 각료는 아베 도시코(65) 문부과학상과 미하라 쥰코(60) 저출산정책상으로, 기시다 내각(5명)보다 3명 적다.
올해 초 비자금 스캔들로 인해 30여명이 징계를 받은 아베파 계열 인사들은 모두 입각하지 못했다. 파벌 해산 직전 규모가 100명에 육박했던 세력 내에서 불만이 나오는 점은 새 정권의 불안 요소다. 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 피살 후 국장 거행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을 때 “아베는 재정, 금융, 외교를 너덜너덜하게 만든 역적”이라고 맹비난한 무라카미 세이이치로(72)가 총무상이 된 것을 두고 아베파 출신들은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아베파 다수의 지지를 받았던 다카이치 사나에(63) 전 경제안보담당상과 고바야시 다카유키(50)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각각 당 총무회장과 홍보본부장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다카이치를 지지했던 아소 다로(84) 전 총리는 당 최고고문으로 임명됐으나 전날 당 집행부 사진 촬영에 참여하지 않아 뒷말을 낳았다. 아베파 관계자는 “비자금 사건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 등용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아베파 내에선 이시바의 보복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저녁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27일 총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내각에 대해선 “납득과 공감의 내각”이라며 “겸허하고 따뜻한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또 납북 피해자 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시바 총리가 27일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자민당 관계자는 “이시바는 국민적 인기가 높아 선거에 강하다는 기대감으로 당선된 측면도 있다”며 “패배하면 반이시바 움직임이 나타나 정권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